라) 메타종교성(Meta-Religiosität)의 성숙
오늘날의 인류는 세계종교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폭이 넓어졌고, 각 나라의 종교문화를 접하면서 타종교들과 공존하는 다문화, 다가정, 다종교, 다원화시대에 살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문명사적 흐름을 주지하면서 우선 세계의 4대종교의 핵심(核心)종지(宗旨)를 되돌아보자. 세계 4대종교로 잘 알려진 유교, 불교,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궁극의 사상은 하나로 통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유교의 인(仁), 불교의 자비(慈悲), 그리스도교의 박애(博愛)사상이며 이슬람교의 본래 정신은 평화사랑과 선행(善行)이다. 그 핵심의 본질은 유교에서는 솔성(率性), 불교에서는 성불(成佛)로서의 해탈, 그리스도교에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重生), 이슬람교에서는 보편적 인간성(common humanity)함양이다. 이토록 숭고한 종교적인 힘을 바탕으로 사람생명을 귀히 여기고 사랑으로 상생하며 올바르게 살아가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한 것은 자연스러운 자연의 섭리로서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이라는 종교문화융화의 원론적 이치와 일맥상통한다.
지구촌에는 다양한 토양과 문화풍토가 풍성한 자양분을 또한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한 문화풍토라는 씨앗에서 각양각색의 꽃들이 서로 다투지 않고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피어있다. 그 모습들은 누가 보아도 더욱 아름답고 풍요롭다. 그와 같이 다양한 종교들이 각각 최소한도 하나의 아름다운 인류의 선을 위해 존재하면 그 힘은 위대한 종교의 힘이 된다. 종교의 힘은 여타의 논리와 지역경계를 허물고 인도주의(人道主義)를 지향하게 이끌어주기 때문에 아름다운 인간사회를 더욱 건강하고 훈훈하게 만들어 나가게 한다.
돌이켜 보건대 제종교적 우월주의, 팽창주의, 제국주의적 선교주의, 제왕적 교조주의, 정치적, 군사적 우월주의에 입각한 신학적 제도적 절대주의, 도그마적인 유일성과 항상성 등이 과거의 목표 지향적 믿음과 사상적 실천이었다. 그것은 한 종단의 종교인으로서 보편성을 잃어버린 개체적 신념행위에 한정된 것과 다름없다. 그러한 지향성은 외피만 평화의 모습으로 화려하게 치장했을 뿐 실제로는 내적 경쟁을 유도하게끔 만들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고도로 발전된 형태의 분쟁과 전쟁을 유발시켜 분리시키고 살생하여 지구촌을 혼란하게 만든다. 이에 인류와 세계종교는 종단의 범주적 차원에서 벗어나 객관적이며 범종교적이고 초월적인 종교성 즉, ‘메타종교성’(Meta-Religiosität)이 왜 필요한가를 날로 새롭게 깨닫고 있다.
메타종교성을 성숙시키는 사상과 실천하게 만드는 종교의 힘은 본래 순진무구한 신앙의 힘에서 나오는 영성적 밝은 기운이다. 그 기운은 영혼의 성스러운 불꽃으로 종교(심)성이며 종교의 순수한 본질과 같다. 그 형성적 본질은 경외(敬畏)롭고 성스러운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은 인간(창 1:27), 하나님의 생기(生氣)를 받아 생령이 된 인간(창 2:7)이다. 그러한 인간이 모인 신앙공동체는 인류문명사를 파괴하지 않고 생명을 존중하며 소중한 인권과 소외된 사람을 보살핀다, 그리고 보다 발전된 정신적 문명을 창출하여 사회에 인도주의적인 가치로 환원시킨다. 과거의 종교는 종교인이 만들어낸 도그마와 크레도에 집착하여 자신의 신앙과 종단만을 위해 힘썼다, 또한 지금도 그러한 범주를 탈피하지 못한다면 음지(陰地)의 종교로 전락한다. 현재의 과학적 안목을 가진 종교와 미래의 과학종교는 다양한 교파와 종파 그리고 인종을 초월하는데 힘써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신앙인의 것, 나의 것이어야만 한다는 독선적 주장에서 벗어나야만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진정한 평화의 씨앗을 발아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가 복음으로 가르치고, 행함으로 보여준 것이 검이 아니라 샬롬이며 평화라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구별하는 새로운 안목과 행함의 결실이 필요하다. 여기에 한국 그리스도인의 자성의 목소리와 성찰적 안목과 행위가 뒤따르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노벨평화수상자인 알버트 슈바이처, 테레사 수녀, 마틴 루터 킹 그 외에도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인물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박애사상을 실천하였기에 세계인들은 진솔한 마음을 가지고 감동하여 찬사와 갈채를 보냈다. 그뿐만 아니라 1962년부터 40여 년간 전남 고흥군 소록도(少鹿島)의 한센병〔나병(癩病, 일명 문등병) Leprosy〕환자들과 동고동락했던 파란 눈의 두 할머니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2017년에 그들의 정신과 평생의 삶이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으로 상영되었고 『소록도의 마리안네와 마가레트』라는 단행본이 출간되어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마리안네(Marianne Stoger)의 한국명은 고지순 그리고 마가레트(Margareth Pissarek)은 백수선이다. 마리안네는 고향 오스트리아(Austria)로 돌아가 대장암으로 투병 중에 있고, 마가레트는 치매가 발생되어 인스브루크의 양로원에서 요양 중에 있다. 두 수녀 간호사에 대한 삶의 행적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른 것으로 만인에게 칭송받고 있다.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운동이 전남도에서 추진 중에 있다. 이러한 종교인의 순수한 신앙과 보편적 행실(行實)의 열매는 대아(大我)적 차원으로 성숙되어 인류애를 위해 영성적으로 성스럽게 승화된 것이다. 그와 같이 승화된 힘은 인류의 공공성을 위해 영성의 불꽃으로 기화(氣化)될 수 있고 그 힘은 오직 순수한 종교(宗敎)의 본질(本質), 순수한 종교의 힘에서만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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