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검의 논리와 검 바람
로마-가톨릭은 검의 논리를 바이블에서 찾아서 무장의 필요성과 정당한 전쟁론을 제시하였다. 그리스도교가 검(힘의 종교)을 선택한 해석학적 배경을 분석해 보자.
“이르시되 이제는 …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찌니라.”(눅 22: 36)
여기서 그리스도교회와 신앙인들은 무기구입은 물론 무기소지의 불가피성과 명분을 찾을 수 있었다.
…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눅 22: 38)
위와 같은 기록에서 ‘두 자루의 검-이론’은 교황 우르반 2세 (1088-1099)가 선포한 십자군 전쟁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최소한 검을 소지할 수 있는 한도와 무기 및 군사력 증강준비가 탄력을 받았다. 두 자루의 검-이론은 예수가 전한 아래의 복음과 바로 연계시켜 해석되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劍)을 주러 왔노라.”(마 10: 34)
그리스도교는 화평과 검이라는 메시지를 문자적으로 이해했고 두 자루의 검 이론과 더불어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상을 가졌다. 로마-가톨릭의 두 자루-검-이론은 정치신학, 제도적 통치이론과 정당한 전쟁론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러한 이론의 정당성과 필연성 및 사상적 훈련은 로마교황의 하늘같이 높은 형상과 존엄한 권좌임을 뒷받침해 주었고 예루살렘 성지회복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십자군전쟁을 일으키는 구심력이 되었다.
약 200년간 지속된 십자군전쟁을 통해 가톨릭의 정치적 권세와 종교적, 정신적 권좌는 전면으로 드러났다. 예수가 복음으로 전한 용서, 이웃사랑, 상호공존과 평화를 멀리하고 불러일으킨 교황과 교황청의 검 바람은 힘의 종교를 탄생시키는 온상이자 실상이 되기 시작했다. 힘의 종교는 제정된 도그마와 교리적인 신조를 준수하고 그에 따르는 신앙고백과 실천으로 다른 종파 또는 타종교를 -때로는 국경을 초월하여- 무력으로 제압하려는 행위까지 서슴치 않았다.
신 (하나님)에 대한 역설적이고 선동적인 성직자의 설교와 정치, 사회, 바이블 등의 이해는 십자군 전쟁 이후에도 더욱 괴이해졌다. 십자군전쟁이 실패로 끝난 다음 로마-가톨릭의 외부 및 내부분열과 경제란이 가중되었다. 바티칸성당의 건축비, 보수유지비 충당 또한 난관에 봉착하여 급기야 면죄부 판매라는 세계교회사의 씻을 수 없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뿐만 아니다. 교황 그레고리 9세(Gregory IX; 1227~1241)는 1229년 툴루즈(Toulouse) 회의를 통해 성직자 외에 일반신자가 라틴어바이블(聖經)을 소유하는 것은 큰 죄악으로 보았고 번역 및 설교하는 것도 금했다. 이를 어기는 자는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火刑)장으로 끌려가 죽음을 면치 못했다.
신학박사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 12. 31, 옥스퍼드대학 교수)는 금지된 라틴어 신약(Vulgates)바이블을 영어로 번역하였다. 위클리프가 사망한지 34년이 지난 후에 가톨릭은 그의 행위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1418년 그의 무덤에서 유골을 꺼내 화형 시켰다. 그리고 교황청의 측근인 가톨릭조직체는 희랍어 바이블(구약일부)과 라틴어 바이블(신약)을 영어로 번역한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 1490/91~1536)을 교살한 후 1536년 10월 6일 그의 시체를 또한 화형에 처했다.
123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는 교황직속의 종교재판소를 설치했다. 교황 그레고리 9세 때부터 시작된 종교재판(Inquisition)은 로마 교황청이 제시한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이단) 자를 색출하는 것이었다. 죄의 유무를 가르는 특별재판소가 ‘인퀴지션(inquisition)이다. ‘인퀴지터(inquistor)’는 그러한 사람들을 잡아 조사ㆍ심문하는 자(者)를 뜻한다. 그들은 ’인퀴지터(inquistor)’에 의해 마녀(魔女)로 낙인찍혀 무차별하게 사냥 당했고 다양한 유형의 고문과 악독한 심문을 통해 참혹하게 처형되었다. 교황청은 종교재판은 그리스도교의 신성한 의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가톨릭을 비판하거나 그의 권위에 반항하는 자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이단자를 체포하고 재판하기 위해 종교재판으로 넘겨져 때로는 산채로 화형(火刑)시켰다. 화형으로 목숨을 잃은 자들 중에는 마녀로 몰린 프랑스의 19세 여장부 생트 잔 다르크(Sainte Jeanne D'arc, 1412~1431),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 1564~1642)의 지동설을 지지한 과학자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를 비롯하여 종교개혁가 틴들(Tyndale), 제롬(Jerom), 후스(Huss), 쯔빙글리(Zwingli) 등은 화형대나 단두대에서 빛나는 아침 햇살에 한 방울의 이슬처럼 사라졌다. 예수가 전한 복음대로 살려고 한 평화주의자인 발덴스인들(Waldenser), 위그노인(Hugenotten)들 그리고 알비인들(Albigenser) 등이 그렇게 무참히 처형되었다. 오직 적 아니면 친구라는 이분법적 인식을 가진 과거의 가톨릭은 높은 교좌에 앉아 지배적 힘의 종교가 되어 세상을 통치했다.
검을 들고 검으로 승부를 겨루는 힘의 종교는 종교(파)간의 평화를 깨는 역할도 담당했고 법적 행사권을 가지고 상대방(국교에서 분파된 다양한 신앙단체들과 타종교 등을 총칭함)을 신의 이름으로 정죄하고자 견제, 견책, 경고, 징계, 파문, 추방 그리고 응징하였다. 정치적 권력과 야합된 검과 십자가 깃발을 앞세운 그 당시의 가톨릭이 상대방을 무력으로 제압한 사건 중의 하나가 파리성당 ‘바르톨로모이스의 밤’(Bartholomäusnacht)이다. 이를 또한 파리의 ‘피의 결혼식’(Bluthochzeit)이라고도 한다. 그 사건의 내용을 정리하여 당시의 상황을 들여다보자.
1572년 8월 24일은 프랑스령 위그노(Hugenott) 나바라 지역의 왕(차후 하인리시 4세 Heinrich IV von Navara)과 프랑스의 국왕 카알 4세(Karl IV)의 여동생인 마가레테(Margarete)와의 결혼식 날이었다. 카알 왕의 장모 카타리나(Katharina von Medici)는 가톨릭신자였다. 카타리나는 그녀의 아들 앙주지역의 하인리시(차후 하인리시 3세 Heinrich III von Anjou)와 모의했다. 프랑스 가톨릭연합과 합세하여 위그노파(위그노지역에서 교세가 크게 성장된 칼빈주의자의 한 분파)를 제거한다는 암살계획이다. 위그노파의 거물인 해군대장(제독) 콜리니(G. de Coligny)와 그의 추종자들도 살생부에 들어있었다.
카타리나를 지지하는 단체가 계획대로 행동하는 시간은 성당종소리였다. 밤에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신호로 암살계획은 무자비하게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식에 초청된 수많은 위그노파들은 배후의 사정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들은 초청된 이유가 상호간의 종교적인 화목차원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날의 결혼식은 뜻깊은 날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밤에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결혼식에 참석한 수많은 위그노파들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그야말로 피바다를 이루었다. 파리의 가톨릭신자들도 피바다를 이루는데 합세하였다. 위그노파들에게 큰 영향력을 주었던 콜리니(Coligny)도 이때 피살되었다. 피 냄새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처참한 살풍경은 위그노지역까지 번졌다. 약 5000~10,000명의 위그노파들이 살해당했고 살아남은 자는 근접국가로 도망갔다. 하인리시 4세는 목숨을 부지했으나 자신의 신앙을 포기한다는 맹세를 해야 했다.
오늘날 가톨릭교회와 신앙인들은 위그노파와 어떤 화해를 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검의 힘을 앞세운 종교, 힘의 종교로서의 로마가톨릭은 제도적 종교의 권좌와 그에 상응하는 위치를 지키려는 목적으로 반대세력이나 그 외의 세력들을 잠재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혈안이 된 눈으로 검을 사용했다. 그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교황청과 가톨릭교회의 막강한 권력남용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 반면에 신(GOD)의 이름을 내세우는 성직자의 부패와 피를 토하는 고통과 통곡하고 신음하는 피지배자의 소리는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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