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하늘(天)사상과 종교성

유교적이다 ⑥~⑦

학담(學潭) 2019. 8. 18. 13:51

⑥ 1392년 이성계(李成桂, 재위 1392~1398년)가 유교(儒敎)의 이념을 수용하고 조선(朝鮮)왕조를 창업했다. 그의 창업은 단군시대의 고조선(古朝鮮)을 승계한다는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유가(儒家)사상이 조선의 국교(國敎)가 되었다. 


국교로서의 유교(儒敎)는 국가통치이념이자 국정경영철학이 되었다. 조선은 유교(儒敎)를 숭상하고 불교(佛敎)를 배척한다는 차원에서 숭유(崇儒)배불(排佛)정책을 단행했다. 유교사상이  공동체사회의 교육이념이자 통치체제로 자리를 잡으면서 그의 사상은 국가경영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고 공동체사회문화의 근간이 되었다. 


경제정책으로 농본(農本)민생주의(民生主義)가 실시되었고 유가의 왕도정치를 추구하고자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는 대의를 이어 받아 만백성의 삶을 중요시하는 민본주의(民本主義)가 형성되었다. 조선의 법전으로 널리 알려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민본주의와 법치주의가 포함되어있다. 그 당시의 유럽정치와 문화를 누차 살펴봐도 조선의 국정경영철학이 ‘민본정치(民本政治)’를 실행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세계사에 유래 없는 조선(朝鮮)만의 역사였다고 평가된다. 


조선의 제왕(帝王)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과인(寡人)이라고 말하였고 신하의 충언을 간과하지 않았으며 민의(民意)를 중요시함으로써 어진 성군(聖君)으로 기록되기를 기대했다. 


⑦ 민의를 중요시하는 조선왕조시대의 민본정치(民本政治)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게 서양의 왕 또는 황제는 신의 뜻에 따라 백성을 다스린다는 의미로 ‘신정정치(神政政治)’를 했다. 

신정(神政)정치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강화하기 위해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된 religion의 교리와 신조를 연계시켜 황제의 통치권이 형성되었다. 그의 통치권은 하늘과 같이 드높아 무한하고 절대적이었다. 특히 중세(中世)시대에 만행된 ‘마녀사냥’으로 인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오죽하면 유럽의 학자들이 중세시대의 상황을 스스로 ‘암흑시대’(暗黑時代; the Dark Ages)라고 한 이유를 알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중세유럽의 암흑시대와 다르게 조선시대는 성리학이 발전되었다. 성리학이라는 용어는 성명의리지학(性命義理之學)의 준말이다. 성리(性理)ㆍ의리(義理)ㆍ이기(理氣)를 주제어로 제시한 것이 이기설(理氣說)과 심성론(心性論)이다. 그것은 인격함양과 도덕적 실천 및 성취를 위한 인성교육의 학문으로 격물치지(格物致知;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앎에 이르게 하는 것)가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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