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서로마 가톨릭제국이 십자군 원정전쟁으로 인해 경제적 타격이 심각해졌고 부패해지면서 사회적 문제가 발생되었다. 1517년 독일의 M. 루터가 서로마 가톨릭교황청에 반기를 들고 개혁을 추진했다. 서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개혁단체로 형성된 조직이 개신교(protestantism)이다. 그리스도교가 근대화시기에 아시아 그리고 한국에 전파되었다. 서로마 가톨릭의 교황청은 오늘날 한국 가톨릭을 포함한 전 세계 가톨릭을 통치ㆍ지도ㆍ관리하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유럽에서 유일신의 신앙단체(=religion)로 그리고 세계적인 영성사상으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로마문화와의 융화에서 비롯된다. 문화융화의 과정에는 네 가지 표본이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인화(Christianisierung)로 변화시키는 교육의 모델을 담고 있어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 있다.
ⓐ 라틴(로마)황제모델문화로서 비(非)그리스도교적인 (교황의) 성육화1)
ⓑ 희랍철학모델로서의 사상적 융화
ⓒ 북유럽 모델로서의 비(非)그리스도교 religion에 대한 절충(折衷)
ⓓ 수행의 모델로서의 비(非)그리스도교 영성에 대한 참여(參與)
⑤ 현대 그리스도교의 신학(神學)과 선교(宣敎)학은 희랍-라틴문화의 모델을 문화융화의 척도로 보고 있다. 가톨릭의 유명한 해외선교사(宣敎師) 마태오 리치(1552~1610)와 로베르토 데 노빌리(Roberto de Nobili, 1577-1656)의 선교방법은 문화융화모델의 범주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기존의 희랍-라틴문화의 영역을 넘어서 아시아의 문화영역까지 문화융화의 광장으로 확대시켜 선교활동을 했다.
로베르토 데 노빌리(Roberto de Nobili)는 1597년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 위치한 나폴리(Napoli) 예수회 수련원에 입문했다. 그는 1605년 인도 마두라이(Madurai)지역에서 해외선교사로 활동했고, 성공적인 선교를 위해 토착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중국의 선교사로 있었던 마테오리치와 같은 방법으로 아시아문화와의 동화과정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분석했다. 노빌리는 인도의 브라만처럼 살고자 브라만 복장을 하였고 인도인의 음식, 교육, 저술, 사상 등의 문화를 수용했다.
그는 지방언어인 타밀어, 텔루구어와 고전어인 산스크리트어를 학습하고 연구하여 인도의 고대어를 유럽에 널리 알렸다. 노빌리가 힌두교 토착문화와 접촉점을 찾아 50년 동안 펼친 그의 선교활동은 자신이 지향하고자 했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문화동화와 융화과정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의 선교 선임자 (사제)후안 페르난데스(Juan Fernández, 1526?~1567)가 주장하는 근본주의적인 신학논리에 의해 노빌리의 선교방법이 금지(禁止)되었다. 노빌리는 페르난데스의 강력한 비판을 받아 그의 선교정책으로 실천했던 문화융화의 길은 막혔다. 그의 전략적 문화융화의 선교(宣敎)활동이 도중에 좌초(坐礁)되면서 열정적인 선교와 탐구정신의 예봉(銳鋒)도 꺾였다. 그러나 역사적 아이러니는 세계적인 시대문화와 정신에 따라 진리의 상징인 서로마 교황청에서 발생했다. 그곳에서 로베르토 데 노빌리가 재조명되어 기존의 가톨릭 선교정책이념과 방향이 바뀌었다.
⑥ 노빌리가 세상을 떠난 지 약 350년 후 1960년대 초반부터 서로마 가톨릭이 선교방침으로 제시한 것이 문화융화과정의 수용이다. 문화융화를 기조로 한 선교방침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다시 등장했다. 여러 사례들 중에 지역문화와의 융화에 대한 수용결정은 가톨릭 교회사에서 그의 과거와 현재를 반추해보면 진리추구에 대한 패러독스(paradox)와 아이러니(irony)가 아닐 수 없다. 그와 같은 선교방침이 글로벌하게 새롭게 정리되어 오늘날 노빌리의 선교활동이 특히 가톨릭 신앙단체에게 새롭게 주목받고 있고 실천의 대상이 되었다.
시대사조의 경향과 흐름은 패러독스(paradox)적인 교리에 변화의 힘이라는 영향을 주고 남음이 있다.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고 동화되기 위해 기존 공동체사회와 조화롭게 변하는 교리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 졌다. 그 교리는 다시 현시대의 변화속성에 편승하여 시대적 경향과 계절에 따라 적합한 옷으로 갈아입고 그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부활되었다. 절대적 교리가 인간에 의해 작성되었고 유일신 신앙교육의 진리로 논리화시켜 설명될 수 있겠으나 그 진리는 일관성이 없고 올곧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또한 변하지 않는 진리가 될 수 없다.
⑦ 라틴-그리스도교 신앙단체, 헬라-그리스도교 철학과 연계된 religion과 문화가 있다. 헬라-라틴전통문화에 융화된 소위 ‘religion 신학’(theology of religions)이 아시아에서는 관심밖에 있다. 다른 신앙단체와 반대되는 그리스도교신앙단체 신학의 일종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로마신화의 문화융화모델이 그리스도론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도그마와 신조체계와 조직체계를 세우는데 논리제공의 원천이 되었지만 그의 논리는 결국 시대사조의 변천과정에 합류하는 지능적 곡예(曲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스-로마문화의 생명력이 그리스도론에 융화되었고 그 흐름은 시대적 그리스도교의 처세와 함께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뿐만 아니라 서구의 전체주의적, 경제적 모델로서의 religion은 과거 식민주의사상과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화석화된 서구 그리스도교의 사상이자 우월주의의 상징이다.
각주
1) 로마-가톨릭은 교황을 예수의 대리인으로써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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