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서로마가톨릭의 시대적 문화상황화에 대한 무대응
1905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의해 을사늑약(乙巳勒約)의 수모(受侮)를 겪고 외교권까지 강탈당했다. 1910(경술 庚戌)년 8월 22일 일본의 강압적인 무력에 의해 한일합방(韓日合邦)이 되어 경술국치(庚戌國恥)라고 한다. 그로 인해 일본이 한국의 통치권을 빼앗아 식민지정책을 시작했다.
총체적인 국가적 난관과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러 종단(宗團)과 신앙단체가 함께 힘을 모아 1919년 3월 1일 3ㆍ1 만세운동(三一萬歲運動)을 전개했다. 그들은 국민들과 함께 대한제국이 시대적으로 불운한 상황내외의 존재임을 공히 인식하고 구국(救國)의 이념에 함께 동참했고 항일운동에도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대한의 국민들이 힘을 합하여 일구어낸 역사적 종교문화경영의 결정판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가톨릭신앙단체는 대한민국이 자주독립국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비폭력 삼일만세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가톨릭에 대한 불편한 역사적 진실과 냉철한 비판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일제강점기에 처해 있을 때, 서로마 가톨릭 교황청에서 파견된 조선의 프랑스 신부(神父와 한국인 신부는 일본과의 밀정(密偵)행위 즉 ‘친일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분석과 의견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한국 가톨릭의 입장은 그 당시 교회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입장은 국가보다 가톨릭 신앙공동체가 우선이었음을 밝힌 것으로 국가와 모든 독립운동가, 애국지사에 대한 국가적 모독이자 국민적 모독이지만 오늘도 가톨릭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서로마 한국가톨릭은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에 벗어나 있어 한국사회에서 유리(遊離)된 문화소외기간을 맞이했다. 한국 가톨릭은 공동체사회문화에서 고립되어가는 현상을 막을 수 없었다.
1963년 서로마 교황청은 한국 가톨릭단체에게 조상제례문화를 수용할 수 있다는 교지를 내린다. 한국 가톨릭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으나 자체 내 혁신적인 문화경영방안과 대안이 부족하여 70년대 초까지 사회 속에 소외된 신앙단체가 되었다. 한국 서로마가톨릭의 조상제례문화와 국가적 문화상황화시대에 관한 대응차원에서의 연구와 검토는 지속되고 있다.
각주
1) 제 3장 하늘(天)사상과 종교성 Ⅱ.한국인의 종교(심)성 6) 서교(西敎, 그리스도교)적이다 ⑫와 제 4장 종교와 문화의 습합(習合)사상 Ⅱ. 종교문화의 습합(習合)사상 2. 한국 서로마 가톨릭 ④ 참조바람.
'제 8장 종교문화경영학-단계와 과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교문화경영의 11단계 – 문화상황화 3) 다이어그램(diagram) 16 - 문화상황화(文化狀況化)시대의 대응 ㈎ 종교(宗敎)와 구국(救國)운동①~③ (0) | 2019.09.10 |
---|---|
종교문화경영의 11단계 – 문화상황화 3) 다이어그램(diagram) 16 - 문화상황화(文化狀況化)시대의 대응 (0) | 2019.09.10 |
종교문화경영의 11단계 – 문화상황화 ㈎ 조선시대 서로마 가톨릭의 선교정책과 문화상황화에 대한 무대응 (0) | 2019.09.10 |
종교문화경영의 11단계 – 문화상황화 2) 다이어그램(diagram) 15 - 문화상황화(文化狀況化)시대의 무대응 (0) | 2019.09.10 |
종교문화경영의 11단계 – 문화상황화 ㈐ 종교(철)학적 관점 (0) | 2019.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