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교(仙敎)문화
약 1만 년 전부터 이어온 단군고조선(檀君古朝鮮)시대의 첫 번째 국조(國祖)는 대황조(大皇祖)라고 한다. 그 시대의 국가사상과 이념이 선가(仙家)의 가르침 즉 풍류도(風流道)로 이어졌다. 그러한 가르침이 선학(仙學)이며 문화로서는 선교(仙敎)문화다. 선학의 길이 선도(仙道)로 표현됐고 때로는 선도문화라고 한다.
① 역사속의 선교(仙敎)문화는 고대의 설화(說話), 야담(野談)야사(野史), 문헌(文獻), 문화재(文化財) 그리고 민족비전(民族祕傳)정신수련법(精神修練法) 등을 통해 직ㆍ간접적으로 제시되고 있어 그의 명맥(命脈)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단군(檀君)고조선사(古朝鮮史)에 관해 유력한 증거자료로 제시할 수 있는 문헌들이 안타깝게도 소실(消失)되었고 약탈당했다.
먼저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할 때 고조선시대의 상원고사(上元古史)와 중원고사(中元古史)의 다양한 문헌과 유적들이 소각당하고 멸실되었다고 추정된다. 그러한 사건은 당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우월성을 내세우기 위해 단군고조선사의 흔적을 없앤 결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군고조선시대의 용산문화(龍山文化, 서력기원 전 2000~3000년)와 홍산문화(紅山文化 서력기원 전 4700~2900년)지역에 동이(東夷)족의 수많은 역사적 유물과 유적지가 발견되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가운데 홍산문화는 1935년 처음으로 랴오닝 성(遼寧省) 서부 츠펑 시(赤峯市) 훙산(紅山)에서 발견되었다.
그 후 1983년 랴오닝성 링위안 시(능원시 凌源市)에서 젠핑 현(건평현 建平县)에서 발견된 뉘우허량(Niuheliang)유적(牛河梁遺跡)이 있다. 그 유적지에서 기존의 홍산문화와 연계된 거대한 제사(祭祀)시설(분묘, 제단, 벽화, 돌무덤, 여신묘)이 출토(出土)되었다. 특히 중국문화에 유례없는 여신묘에서 다량의 채도(彩陶), 옥기, 옥결(玉缺), 구슬 등의 유물과 원방각형태의 제천단(祭天壇)이 발굴됐다. 전남 여수와 강원도 죽왕면 문암리 유적에서 나온 옥결(玉玦)은 홍산문화에서 발견된 옥결과 동일한 형태다. 그러한 유적지와 유물들은 모두다 중국에 없는 오직 단군고조선시대의 역사적 문화이자 문명임을 증거(證據)하는 것이다. 하지만 용산문화와 홍산문화지역은 현재 중국이 관리하고 있고 지금도 중국의 동북공정이 진행되고 있다. 그에 대한 국가적인 대책과 전문가양성 및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항상 필요하다.
전문가의 연구에 따르면, 단군고조선사에 관한 기록이 중국고대사〔중국 25사(史)〕문헌 등에 잔영(殘影)으로 남아있으며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그리고 몽고지역에서 남겨진 민속문화ㆍ사상과 문화재 등을 통해 단군문화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지역에서 전래되고 있는 신화가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에 대한 전설과 유사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밝혀졌다. 단군고조선 시대에 승계된 것으로 알려진 선가(仙家)의 가르침은 단군 고조선시대의 문화로 이신설교(以神設敎, 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라고 한다.1) 이신설교의 준말은 신교(神敎)이며 신교가 선가의 사상이자 가르침이라고 하여 선교(仙敎)라고 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최치원(崔致遠, 857~?)은 고조선시대의 선교사상이 국가의 현묘(玄妙)한 도(道)라고 했다. 현묘한 도가 풍류(風流)라고 설명했던 한 내용이 그의 난랑비서문(鸞郎碑序文)에 들어있다. 난랑비서(鸞郎碑序)는 『삼국사기』 권4 진흥왕조에 기록되어 있어 풍류도(風流道)의 존재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② 신라시대의 화랑오계(花郞五戒) 즉 세속오계(世俗五戒)는 원광법사(圓光法師, ? ~ 638?)에 의해 주창(主唱)되었고 화랑교육과 국가경영의 핵심규율이 되었다. 다섯 가지 계율(五戒)은 사군이충(事君以忠,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긴다는)ㆍ사친이효(事親以孝,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긴다)ㆍ교우이신(交友以信, 믿음으로써 벗을 사귄다)ㆍ살생유택(殺生有擇, 산 것을 죽임에는 가림이 있다)ㆍ임전무퇴(臨戰無退, 싸움에 임해서는 물러남이 없다)이다. 여기서 유가(儒家)와 불가(佛家)의 사상이 포함되어 있는 핵심적인 주제어는 찾아낼 수 있어도 ‘임전무퇴’의 개념은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에서 발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원광법사가 주창한 화랑도의 세속오계는 그의 독창적인 견해라고 말할 수 없다.
원광법사 이전의 신라시대뿐만 아니라 고조선시대에도 유가(儒家)와 불가(佛家)사상이 공존할 수 있는 융화사상이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미루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임전무퇴의 개념은 많은 사람들이 유추하건대 단군고조선시대의 사상문화 즉 선ㆍ유ㆍ불 삼교(三敎)를 두루 포함하고 있었던 풍류도에서 나왔고 풍류도의 시원(始原)은 고신도사상(古神道思想)과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그와 같은 사상과 정신은 제정일치(祭政一致)체제의 천제(天祭)문화와 함께 한민족의 역사가 되었다. 천제를 올리는 민족은 천손(天孫)이며 천민(天民)이라는 긍지(矜持)를 가지고 하늘을 경외하는 천손(天孫)의 공동체의식을 함양한 것으로 판단된다.
오늘날 천제의 장소로 널리 알려졌고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강화군 마니산의 참성단(塹星壇)이다. 단군(檀君)시대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천제를 올렸던 참성단은 사적 제136호로 정해졌다. 지금도 민족 제1의 성적(聖蹟)으로 설명되는 참성단에서 매년 천제(天祭)행사가 열리고 전국체전(全國體典)때는 봉화를 채화(採火)하는 의식이 열린다. 이러한 제천행사와 봉화채화의식은 민족대통합을 이끌어 나아가는 국가경영철학이자 종교문화경영의 길로 이어지고 있다.
각주
1) 1803년 조선시대의 사학자 이종휘(李種徽)가 그의 저서 동사(東史를 발표했다. “『동사』는 기전체형식에 따라 본기(本紀)ㆍ세가(世家)ㆍ열전(列傳)ㆍ연표(年表)ㆍ표(表)ㆍ지(志)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조선과 삼한, 그리고 부여ㆍ고구려 계통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것이 특징이다.” 그 책의 수산집(修山集) 권(卷)12 신사지(神事誌)편에 “환웅, 즉 신시천왕(神市天王)이 이신설교(以神設敎)(故桓雄爲神市天皇 而雄之子號檀君云 神市之世 以神說敎)한 이후 마니산의 참성단과 강화도의 삼랑성,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 고구려의 동맹(東盟), 신라의 성모사(聖母祠), 그리고 삼신산(三神山)에 대한 신앙 등으로 이어져 내려온 내력이 기술되어 있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1653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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