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종교(宗敎)와 Religion

Ⅲ. 종ㆍ교(宗ㆍ敎)자의 분석 2. 유가에서 종(宗)과 교(敎)자(字)

학담(學潭) 2019. 7. 28. 18:18

2. 유가에서 종(宗)과 교(敎)자(字)

 

유가(儒家)에서 자아성찰을 중요시 하듯이 고대 서구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나는 나 자신을 탐구했다’고 했던 말을 사유(思惟)해 보자. 자기 자신의 탐구는 성찰과 반성에서 비롯된다. 성찰과 반성의 근거가 자기성립의 근간이 되었고 그 근거로 인해 세계근원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종ㆍ교(宗ㆍ敎)의 개념분석은 여러 분야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종(宗)자(字)와 교(敎)자의 본래 의미와 사상을 발견하기 위해 동양고전의 선택은 불가피했다. 

 

종(宗)자의 어원적 글자 풀이, 의미와 용처(用處) 등은 이미 위에서 설명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유가의 경전 중에 교(敎)자가 사용된 부분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보고 종ㆍ교의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공자(孔子)의 사상적 학파가 맹자(孟子)에게로 이어지면서 공맹(孔孟)사상이라고 한다. 그 사상은 유교(儒敎)의 대학과 중용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고전문헌 중에 널리 알려진 유가(儒家)의 대학(大學) 1장과 중용(中庸) 제 1장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문장의 띄어쓰기에 따라 본래의 의미를 바르게 직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대학편 대학 1장

 

“大學之道在明明德在新民在止於至善”(대학지도재명명덕재신민재지어지선):  

 

) 많은 사람들이 대학편 대학 1장을 설명할 때 기존의 현토(懸吐)방식에 따라 다음의 설명 ①과 같이 문장을 분리하여 해석하고 있다. 

 

설명 ①:  大學之道(대학지도) : 대학의 도는  

         在明明德(재명명덕) : 명덕을 밝힘에 있으며

         在新民(재신민) :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在止於至善(재지어지선) : 지극한 선에 머무름에 있다.

 

☞ 大學之道(대학지도), 在明明德(재명명덕), 在新民(재신민), 

                      在止於至善(재지어지선)

 

 

2) 대학편 대학 1장

 

“大學之道在明明德在新民在止於至善”(대학지도재명명덕재신민재지어지선): 

 

나) 1980년도 봉우 권태훈(鳳宇 權泰勳;1900~1994) 선생(先生)은 대학편 대학 1장을 논할 때 기존의 현토(懸吐)방식보다 대학의 삼강령(三綱領)에 의거하여 다음의 설명 ②와 같이 해석했다.2) 대학의 삼강령(三綱領)은 도(道), 덕(德), 민(民)이다. 

 

설명 ②:  大學之道(대학지도): 대학의 도(道)는

         在明明(재명명): 본래(선천 先天에) 밝았던 것(성품 性稟)을 (후천 後天에) 다시 밝히는데 있으며

         德在新(덕재신): 덕(德)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며

         民在止於至善(민재지어지선): 백성(民)은 지극한 선(善)에 머무름에 있다. 

 

☞ 大學之道(대학지도), 在明明(재명명), 德在新(덕재신), 民在止於至善(민재지어지선)

 

 

수천 년 간 유교(儒敎)의 최고 학문의 입문서(入門書)이자 필독서(必讀書)로 엄선(嚴選)된 경전(經典) 중에 하나가 대학(大學)이다. 대학은 유생(儒生)에게 최고의 학문을 학습(學習)하는 것으로 중요한 경전이었다. 

 

대학(大學)편 대학 1장에서 중요시 되고 있는 것이 삼강령(三綱領)인 도(道), 덕(德) 그리고 민(民)이다. 대학지도(大學之道)의 원리와 본질은 인간이 공동체사회에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큰길(大道)임을 천명한 것이다. 위에 제시된 대학 1장의 설명 2를 조금 더 자세히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대학지도(大學之道)

 

대학의 도(道)는 천도(天道), 지도(地道) 그리고 인도(人道)를 함의(含意)하고 있으며 그 도(道)에는 무형(無形)과 유형(有形)의 도가 포함되어 있다. 전자는 정신과학(=唯心論)으로서 형이상학(形而上學)을, 후자는 자연과학(=唯物論)으로서 형이하학(形而下學)을 말한다.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이 하나로 합치(合致)되어 공동체사회에서 활동하는 존재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다. 사람은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의 주체이자 중심이 되어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지만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는 길 즉 인도(人道)의 길을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대학지도의 의의는 인도(人道)를 압축시켜 서두(書頭)에 총론적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파악된다. 그 길은 인도주의(人道主義)정신과 실천사상으로 발전시켜 인류문화사를 승계하고 인류문명사를 이끌어 나아가야한다는 엄중한 가르침을 설명한 것이다. 

 

 

㉡ 재명명(在明明)

 

하늘(天)의 도(道)는 통상적으로 밝음(明)을 뜻한다. 명(明)의 의미는 사람의 본성(本性)에 내재된 선천(先天)의 밝은(明) 마음(心) 즉 천심(天心)을 후천(後天)에서 다시 밝히라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공부이기에 유심론(唯心論)을 설명한 것이다. 

고대로부터 선현들은 인간의 머리는 하늘을 상징하며, 하늘의 ‘밝음’이 인간 본연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어 사람은 하늘과 같은 성품(性稟) 즉 천품(天稟)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유가(儒家)에서 천품은 마음의 작용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내재적 천성(天性)이며 천성은 본연지성(本然之性) 또는 본성(本性)이라고 한다. 본성은 본래 순선(純善)으로 보고 본심(本心) 또는 본연의 성품이라고 설명했다.3) 유가에서 사용된 성본선(性本善)은 사람의 성(性)이 본래 착하다는 뜻이며, 맹자가 주장한 성선설(性善說)과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하늘 님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자 천성을 지지고 있다는 것을 재론한 것이다. 

 

주지하고 있듯이 중용 1장에 하늘이 명(命)한 것을 성(性)이라고 했다(天命之謂性, 천명지위성). 즉 인간이 천명(天命)으로 부여받은 것이 성이며 그 성은 본래 하늘의 마음과 같다고 하여 성리학(性理學)에서 천성(天性) 또는 본성(本性)이라고 했다. 천성은 본연(本然)의 마음(本性)이자 신성(神性)과 같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신성은 하늘과 같은 신적 천성(天性)과 성품(性稟)을 뜻한다. 인간 본래의 마음(本心本)은 순선(純善)이자 천성의 밝음과 같아 순수한 자아를 발견하도록 추구한다. 

 

천부경(天符經)에 본심본 태양앙명(本心本 太陽昻明)이라고 했다. 본래의 마음 즉 본심(本心)은 마음속에 내재된 밝은 빛이며 그 빛은 또한 솟아오르는 태양의 빛과 같아 스스로 밝음, 광명의 세계를 추구한다. 그래서 인간의 본래 마음은 태양앙명(太陽昻明)과 같은 존재이며 인간의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신성은 ‘광명의 하늘 님’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고유 성품(性稟) 즉 천심(天心)과 천성의 발현(發顯)은 현실세계에서 참나(=진아 眞我)를 발견하여 내재적 광명의 빛을 함양하는 것이다. 

 

정신수련에서 고력(苦力)수행은 태양앙명의 길을 구현(具顯)하기 위해 체험하고 천성의 밝은 빛을 후천에 다시 되찾아서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천명으로 받은 선천의 본래 마음(本心) 즉, 자신의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밝은 빛을 후천에서 다시(再) 발현시키는 것(在明明)이 수행의 목적이고 선가(仙家)의 가르침이다.6) 선가(仙家)에서 재명명(在明明)의 길이 중명(重明)사상이라는 것을 제시한 것이다. 그 사상은 순례자의 영원한 길이 되었다. 인간의 본심에 하늘과 땅의 요소와 기운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人中天地一, 인중천지일). 그것은 인간이 천지(天地)와 합일된 만물의 영장이자 왜 소우주인가를 스스로 깨닫기 위해 설명된 중명사상의 대의(大義)라고 생각된다. 

 

천ㆍ지ㆍ인 삼재(三才)사상, 삼ㆍ일(三ㆍ一)사상, 삼일신고(三一神誥) 등은 한국의 유구한 정신문화로 계승(繼承)되고 있다. 삼일신고 신훈(神訓)편 끝부분에 하늘 님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하늘 님은) 소리와 기운으로 원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친히 모습을 드러내니, 저마다 지닌 본성에서 씨알을 구하라. 머릿골 속에 내려와 있다.7) 

하늘 님은 누구나 원도(願禱)하면 자신의 머릿골 속에 이미 내려와 있다는 가르침이다. 내가 내 안에서 구해야 된다는 말씀이자 사람이 곧 하늘 님이라는 뜻이다. 씨알(●)은 하늘 님과 같은 저마다의 밝은 본심이자 저마다의 주체가 되는 주재주(●)로서 순수 자아(自我)가 된다. 따라서 신훈(神訓)에 나오는 자성구자(自性求子)의 가르침은 재명명(在明明)의 길과 유관(有關)하며 재명명은 선가(仙家)의 중명(重明)사상과 맥락을 같이한다.  

 

㉢ 덕재신(德在新)

 

덕(德)의 개념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질적으로 유익함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유물론(唯物論)을 뜻한다. 그것은 주로 물질적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 삶과 가장 밀착되어 있어 정신세계와 유리(遊離)되지 않은 실용적 존재이자 사회적 가치 창출과 환원의 매개체가 된다. 

덕(德)은 유물론적 가치로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시대에 맞게 사람이 실천할 수 더욱 더 새로워지는데 본말(本末)이 있다. 따라서 덕재신(德在新)은 덕(德)은 재신(在新) 즉 날로 새롭게 된다는 뜻이다. 먼저 덕(德)의 개념은 형이하학으로서 유물론에 입각한 자연과학과 연관성이 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자연과학의 본질은 변화의 속성을 연구하고 그 의의를 밝혀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변화와 속성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논리와 대상을 지속적으로 변화 및 발전시켜 나날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 또한 특성이다. 그러한 특성은 문명의 이기(利器)를 창출시켜 그 시대의 사람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어 생활의 유익함, 편리성, 안전성, 쾌적함,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심 등을 제공한다.  

또 덕재신은 사회적으로 덕을 추구하고 덕을 쌓아나갈 수 있게, 시대에 적합한 덕을 실천할 수 있도록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서로 권면(勸勉)하면서 그와 친숙(親熟)하고 보다 더 가까이 하게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덕의 사회문화가 형성되도록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 그 덕을 근간으로 한 사회문화구조가 항상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모습으로 덕의 개념을 이해하고 덕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아가야 한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가면을 던져버리고 공동체사회에 사람다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덕의 본질이자 특성이기에 변함없는 인류의 공동선추구로 승계(承繼)된다.

 

 

㉣ 민재지어지선(民在止於至善)

 

유가에서 군자(君子) 즉 사람다운 사람이 정치를 하면, 백성(民)들이 선(善)해지고 성실(誠實)하게 되어 나라는 평화롭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유가의 왕도정치(王道政治)사상 중에 하나다. 왕은 정치를 잘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선덕(善德)을 베풀고 그들에게 칭송받는 성군(聖君)으로 남기를 원했다. 

 

민(民) 재지어지선(民在止於至善)은 국민(國民)이 나라의 주체가 되어 공익을 위해 덕(德)을 쌓고 또 그렇게 서로 권면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되면 지극한 선(善)에 머문다는 뜻이다. 지극한 선(善)은 인도주의차원에서 국민과 함께 일구어낸 공동선(共同善)이다. 오늘날 인도주의의 차원에서 인성을 함양시키고 생명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여러 분야에서 교육시켜 능동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끄는 정신과학이 필요하다. 

 

정신과학은 그 시대의 상호 연계성을 가지고 덕을 베풀 수 있고 공동선의 문화를 지향하는 사회교육프로그램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변화에 상응하는 덕(德)을 발견하여 사회에 실천할 수 있도록 새로운 국가적 차원의 프로그램이 제시되어야 한다. 국가는 국민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국민은 다함께 주어진 도덕(道德)을 실천해야 공동선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독일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인간이 실천할 수 있는 공동의 선의 정점(頂點)은 ‘최고선(最高善, Das Höchste Gut, summum bonum)’이라고 했다. 칸트는 도덕적 실천을 위해 도덕체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도덕형이상학(Metaphysik der Sitten)’을 주장했다. 그의 도덕형이상학이 도덕체계에 필요한 도덕법칙으로 주목받으면서 근대사회를 지배했던 도덕적 목적이나 결과보다는 도덕적 의무와 동기가 강조되었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성품계발과 함양 그리고 사람다운 사람의 참된 삶을 중요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의무론(deontology)이라고 한다. 덕을 지닌 사람이 행하는 도덕적 행위는 행위자 중심의 도덕철학이다.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은 인간 행위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밝히는데 관심을 가지고 어떤 행위를 왜 실천해야 하는 가를 밝히는데 초점을 두었다. 도덕적 행위는 의무와 규칙을 따르는 행위로서 행위중심의 도덕철학이 된다. 그 행위는 선(善)한 행위(行爲)이자 의지와 의무의 개념으로 좋은 것(das Gut)이라고 규정했고 선행(善行)은 공동으로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칸트는 생각했다. 

공동선이자 최고선을 추구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은 스스로의 책무, 존재가치, 당위성, 필요성 그리고 공공성 등을 잘 인식하고 민족의 번영과 인류평화에 앞장서야 한다. 

 

지극히 선한 행위와 공동선의 추구는 『대학(大學)』의 혈구지도(有絜矩之道)5)와 같은 맥락이다. 혈구지도는 자신의 처지로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린다는 뜻으로 홍익사상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와 국가의 안녕과 행복 그리고 평화를 안착시킬 수 있는 국가의 도덕문화경영철학이 중요하며, 비전을 제시하고 그와 연계된 글로벌(global)시대의 인재양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국민 개개인이 쌓은 덕을 사회적 가치로 환원시키는 존재자가 바로 올바른 길을 가고자 최선(最善)을 다하는 국민이다. 그는 사회적 가치 창출과 환원의 주인공이며 또한 국가의 주인이다. 이와 같은 이념추구로서의 민재지어지선(民在止於至善)에 대한 의미는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이 선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지극한 선(善)에 이를 수 있고 또 그 안에 머물 수 있다. 그렇게 선의(善意)가 실행되어야만 국가와 국민의 진정한 행복과 평화도 함께 깃든다. 이러하듯 유가의 이상세계추구가 덕치(德治)사회라는 것을 파악해 볼 수 있다. 민(民)을 중심으로 도(道)와 덕(德)이 실현되는 공동체사회, 그 사회의 질서유지의 모태로 삼은 중심축은 덕이다. 국민이 선덕(善德)을 쌓아갈 수 있도록 추구된 도덕(道德)사회, 지상평화를 일구어내고자 노력한 실천사상이 도(道)ㆍ덕(德)ㆍ민(民) 삼강령(三綱領)이다. 

 

대학 1장에 나오는 도(道), 명명(明明), 덕재신(德在新), 민재지어지선(民在止於至善)의 개념들은 또한 교육적인 차원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목적지에 이르게 하며 또 선한 곳에 머물게 하도록 실천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그와 같은 삼강령에 관한 교육방법론을 제시한 사람은 공자이후 약 108년 만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맹자(孟子)였다.   

 

 

 

1) 중용의 저자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공부자(孔夫子)의 손자인 자사(子思, 서력기원전 483?~402)라고 한다.

2) 봉우 선생은 친(親)자를 신(新)자와 같은 의미로 보고 해석했다. 

3) 유가(儒家)에서 인간의 본성을 ‘순선(純善)’하다고 보았다. 성리학(性理學)에서 논하는 순선사상은 인성함양교육의 토대가 될 수 있다.

4)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의 제 1장 Ⅲ. 종ㆍ교(宗ㆍ敎)자의 분석 2. 유가(儒家)에서의 종(宗)과 교(敎)자(字), 3. 중용 제 1장과 대학 1장 – 그 사상적 배경과 의의 참조바람

5) 혈구지도(有絜矩之道): 군자는 자신에 미루어 남을 헤아리는 도가 있다. 이로써 윗사람에게 당하여 싫은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며, 아랫사람에게 당하여 싫은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앞사람에게 당하여 싫은 것으로 뒷사람 앞서 하지 말며, 뒷사람에게 당하여 싫은 것으로 앞사람 뒤에서 하지 말며, 오른쪽 사람에게 당하여 싫은 것으로 왼쪽 사람과 사귀지 말며, 왼쪽 사람에게 당하여 싫은 것으로 오른쪽 사람과 사귀지 말라. 이것을 일러 자신을 미루어 남을 헤아리는 도라 하는 것이다.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毋以使下. 所惡於下毋以事上. 所惡於前毋以先後. 所惡於後毋以從前. 所惡於右毋以交於左. 所惡於左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대학(大學)

6)  제 3장 하늘(天)사상과 종교성 Ⅱ. 한국인의 종교(심)성 2. 선교(仙敎, 䄠敎)적이다 참조바람

 

7) 성기원도 절친견 자성구자 항재이뇌(聲氣願禱 絶親見 自性求子 降在爾腦). 절(絶)은 ‘근절하다’와 ‘반드시’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절친견(絶親見)은 친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와 반드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후자의 해석이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