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문화절대주의와 상대주의 관점
문화절대주의의 개념은 그리스-로마문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그리스도교의 절대성과 그리스도교대제국의 통치문화에서 파생된 용어로 보인다. 유일신 신앙을 중심으로 발전된 그리스도교문화는 서구문화사상의 절대적 우월성으로 인식되었고 그와 상반되는 사상과 문화는 상대주의로 분석된 것이다. 그러므로 서구문화사상의 원류(源流)와 역사적 맥락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대 그리스문화의 흐름과 영향을 요약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① 고대 그리스문화는 마케도니아제국의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B.C. 356~323)왕 시대(재위 B.C.336~B.C.323)에 꽃을 피웠고 유럽문화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는 페르시아와 인도의 인더스 강 지역에 이르기까지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했다. 정복지역에는 여러 형태의 도시가 형성되어 동서교통이 활발해졌다. 그로 인해 그리스문화와 오리엔트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Hellenism)문화가 탄생되었고 그 문화는 유럽의 다양한 지역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헬렌(Helen)의 개념은 한 시대의 축을 담당한 그리스인의 후계자라는 의미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자국(自國)의 나라를 헬라스(Hellas, 영어 Greece)라고 했다. 헬레니즘의 용어는 1863년 독일의 역사학자 드로이젠(Johnn Gustav Droysen, 1808-1884)의 저서 『헬레니즘사(史)』에서 사용되었다. 그리스인이 아니면서도 그리스인 보다 언어 구사력(驅使力)과 어휘력이 뛰어나고 그리스인과 같은 생활양식을 영위했던 고대 유럽인 생활과 문화가 헬레니즘으로 표현된 것이다.
② 로마제국이 강성해지면서 헬레니즘 문화는 쇠태(衰態)하였으나 로마제국은 그리스문화를 수용하여 로마문화를 발전시켰고 그 후 그리스-로마문화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 문화는 유럽의 고대사를 대변하지만 그리스도교의 문화는 아니다. 로마문화는 로마황제체제에 의해 장기간동안 공고히 지속되었다.1)
로마제국의 황제문화(皇帝文化)가 태동된 것이다. 로마황제는 신의 대리자로서 그의 위상(位相)은 존귀했고 그의 위엄(威嚴)은 천상을 찌르고도 남았다. 로마의 황제문화가 예수이후 유일신사상과 정치적으로 접목되면서 유럽의 여러 국가와 민족을 하나의 사상으로 묶을 수 있는 로마대제국의 통치사상을 창출해 냈다. 그것은 황제정치문화와 그리스도교의 신앙단체문화가 하나 되어 그리스도교대제국을 다스릴 수 있다는 정교(政敎)일치였다.
정교일치가 확고해지면서 로마황제의 통치체제와 황제문화는 탄력을 받았다. 황제는 살아있는 유일한 신적 존재이자 통치이념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세월의 부침 속에 로마의 황제문화가 무너졌으나 황제문화의 모델을 그대로 받아 들여 형성된 신앙문화가 그리스도교의 교황문화(敎皇文化)다.
③ 교황문화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사상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면서 다방면에 영향을 주었고, 그의 파급력은 교황체제문화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 그리스도교(교황)문화사상의 본질은 가톨릭주의(Catholicism)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분석은 가톨릭문화의 진면목을 살펴보고는 것이다. 서구 고대교회사를 살펴보면, 313년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공인(公認)했다. 밀라노칙령 이전의 그리스도교시대가 초대가톨릭 또는 고대그리스도교, 공인 이후가 콘스탄티누스의 전환점이라고 구분되었다. 고대 그리스도교문화와 로마제국의 황제문화를 접목시켜 발전된 것이 가톨릭주의(Catholicism, Catholicismus)의 단초가 되었다. 가톨릭주의의 대표적 인물가운데 한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다.
아우구스티누스 젊은 시절에 소아시아지역에서 번성한 신플라톤주의에 심취했고 마니교(摩尼教, Manichaeism)2)에서 근 10년 동안 생활했으나 깨달음이 없어 방황하다가 제도권 종교로 자리매김한 그리스도교로 전향했다. 그는 당시의 그리스-로마문화를 융화시켜 범 종교문화사상인 가톨릭 교리를 만들었고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을 정립했다.
Catholicism의 어원은 그리스어 카톨리코스((καθολικός, katholikos)에서 나왔다. ‘카톨리코스’는 공동적인, 일반적인, 보편적인, 우주적인 의미를 뜻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가톨리시즘이 본래 그리스도교의 유일한 문화가 아니고 그리스-로마의 문화사상을 수용하고 조화롭게 융화시켜 신앙의 전체성을 제시한 교리문화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래의 가톨릭주의는 동ㆍ서로마로 분열되기 이전에 하나의 보편(普遍)교회주의3) 또는 공교회(公敎會)주의를 주장한 사상단체(~ism)였다는 것이 확연해졌다. 차후 서로마 가톨릭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에클레시아 가톨리카(ecclesia catholica)라는 개념은 ‘우주적’이라는 뜻이며, ‘과거에 그리스도를 숭상했고, 현재 신앙하며 장래에도 예정대로 신앙할 사람들의 총수’라는 의미를 가진다.”4)
가톨릭 신앙인들의 총수라는 의미에는 선민(選民)사상이 들어있다는 것이 색다르다. 그러한 교리문화가 교황문화로 급성장되면서 유일신과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절대적 신앙단체로 발전되었다.
④ 교황문화는 유일신사상을 그리스도교대제국의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교황청은 세계 그리스도대제국의 영성적 중심지가 되었고 신의 이름하에 그리스도교의 정신문화와 정치문화의 중핵을 담당하게 되었다.
교황문화가 신의 통치문화의 상징으로 더욱 확대 해석되었고, 신앙고백에 의해 작성된 교의학(敎義學)과 접목되면서 유일신 문화이자 문화절대주의 그리고 문화전체주의(全體主義, totalitarianism)라는 개념이 나왔다. 그와 같은 신앙고백적인 문화개념은 상대적(相對的) 우월감을 가지고 타국문화를 배타시하며 타국의 사람을 야만인(野蠻人)으로 생각하고 야만인의 문화라는 용어를 잉태시켰다. 이와 같이 문화절대주의 개념 저변에 숨겨져 있는 당혹스러운 의미와 황당하고 불편한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한 용어를 18~20세기에 등장시킨 서구학자들은 물론 근ㆍ현대사를 이끄는 정치인들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 20세기 후반에 사용된 극단적인 문화상대주의라는 개념이다. 그러한 개념들이 세계적인 국제변화와 사상적 변화에 의해 다소 완화된 표현이라고도 하지만 의미상으로는 별로 차이가 없다. 따라서 문화절대주의와 문화상대주의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아야 인류문화(사)의 보편성을 기대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문화의 다양성은 자연스럽게 각각의 독특성과 역사적 가치가 승계되고 일정부분 보존되고 있어 인류문화를 풍요롭게 했다.
각주
1) 로마제국은 기원전 27년부터 시작되었으나 관점에 따라 제국의 멸망시기를 다르게 볼 수 있다. 단일 로마제국이 395년 동ㆍ서로마로 분할되었고, 476년 서로마 제국,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했다.
2) 이원론적 사상을 가지고 있는 마니교는 고대 페르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고 태양신을 숭배한다. 자세한 것은 저자 안병로, 『그리스도교의 검과 평화』, 지성사, 2016. 제 1장, 24쪽 참조바람
3) 초기 그리스도교는 보편교회주의를 표방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신앙구성요소, 하나의 신앙조직체, 신학과 교리, 전례와 윤리, 사상적, 실천적인 특징을 포함하고 있다. 11세기 하나의 로마교회가 동ㆍ서로 분열되면서 동방정교회와 서방 가톨릭의 보편교회의 사상은 다르게 발전했다. 그리고 16세기 서로마 가톨릭에서 개신교가 분파되면서 보편교회에 대한 정의는 여러 형태로 정의되었다.
4) 안병로, 『그리스도교의 검과 평화』, 지성사, 2016. 제 1장. 3) 아우구스티누스와 종교전쟁,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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