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종교문화의 습합(習合)사상
종교문화의 속성이자 특색은 지역적 고유 풍토와 관례 등을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하고 주변의 문화와 교류하며 학습과 습합과정을 거치면서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문화의 습합사상이 형성되어 발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종교문화의 본질이자 보편성이다. 종교문화의 습합사상이 한국 그리스도교의 신앙단체와 한국토양에서 자생(自生)한 새로운 신앙단체에게도 영향을 주어 발전되었다는 것을 다루고자 한다. 그와 함께 이미 위에서 설명된 Ⅱ. 한국인의 종교(심)성의 단락에서 다소 미진했던 부분은 이 단락에서 보완하고자 한다.
1. 한국 개신교
개신교에서 행하고 있는 새벽기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보통 새벽 4시경 교회의 새벽제단에 신자들이 모여 각자 나름대로 원하는 것을 기도한다. 그뿐만 아니라 성직자의 새벽설교는 새벽의 문을 열고 하루 일과의 시작을 알린다.
① 옛날 선현(先賢)들의 말씀에 의하면, 사람은 인시(寅時, 새벽 3시 30분에서 5시30분 사이)에 일어난다(人起於寅 인기어인)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불분명하나 세계의 종교사원(寺院)은 대부분 새벽 4시경에 타종(打鐘)소리로 새벽을 깨운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국불교의 산사(山寺)에서 울려 퍼져 나오는 타종소리, 목탁소리, 법고소리처럼 교회의 새벽종소리, 새벽설교 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동서양의 시간차를 구별해 보아도 서구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새벽을 깨우는 종소리와 예배(禮拜)를 올리고 찬송하는 소리가 새벽 4시경에 시작된다는 것이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경이롭다고 하겠다. 지방뿐만 아니라 특히 서울의 여러 지역, 여러 곳에서 새벽종소리가 거의 같은 시간대에 울려 퍼져서 공식적인 민원이 발생했다. 그 민원은 대략 2000년대부터 수용되어 교회의 종(차임벨)소리가 소음(騷音)이라는 차원에서 자제해야 한다는 자치단체의 권고에 따라 점차적으로 감소되고 있다.
② 한국 개신교의 부흥회(復興會)가 부흥(復興)성회(聖會)라는 의미로 승화되어 일제식민지시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찬송가 중에 ‘요단강 건너서’ 다시 만난다는 것은 암울한 시기에 사후세계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지만 신앙적이고 상징적인 의미에서 종교성을 자극했다. 내세(來世)를 추구하는 신비주의적인 설교와 기도 그리고 축복 등은 염세주의적인 측면이 강했다. 그 당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는 의미는 적극적인 현실참여와 극복에서 이루어지는 현실경영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부분도 있었다. 그 반면에 내세를 위한, 부활과 영생을 위한 신앙경영이 주축이 된 경우가 많았다.
성령강림과 은혜, 축복, 치유 등의 구복적인 설교유형과 행위들은 일제(日帝)시대의 압박과 서러움에서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성행했다. 하나님, 주 예수의 영성강림기대와 외침이 신비주의적인 차원에서 성대한 부흥회성회를 통해 지속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지하고 지적하고 있듯이, 성령부흥회는 유일신, 성자 예수와 성령강림체험을 강조하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러한 자체가 샤머니즘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부흥회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은 직접참여는 물론 신앙인들의 경험담과 여러 유형의 부흥회설교가 녹음된 카세트 청취 및 녹화된 비디오영상 등을 종합하여 아래와 같이 요약하고자 한다.
부흥강사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성령강림을 설명하면서 바이블 신약에 나오는 구절을 암송하면서 눈을 감고 기도하기도 한다. 그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육신(肉身)이 병든 자와 영(靈)이 병든 자들이여! 그들 모두다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고 외치면서 운집한 사람들을 향해 양손을 들어 올려서 축수(祝手)하고 죄의 회개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두 손을 머리위로 들고 머리는 정면(正面)이나 하늘을 향하게 하고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운 몸짓을 하면서 외치는 기도, 통성기도가 이어진다.
하나님의 음성을 간절히 듣기 원하고 울면서 몸부림치는 참석자들의 모습, 때로는 구마(驅魔, Exorcism)의례(儀禮)가 부흥사를 통해 실행되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 시간이 성령강림이자 성령의 감동이며 성스러운 신의 축복을 맞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여러 가지의 형태의 모습과 기원 그리고 희망의 요소들은 운집한 군중들의 열기를 통해 용광로의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들 중에 대부분이 성령의 은혜가 그들에게 감응하여 성령의 불꽃처럼 두루 퍼지는 성령의 축복을 감지했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부흥회를 통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고 그들의 감성적인 마음은 예수믿음을 통해 신의 축복과 은혜를 갈구한다.
개신교의 부흥회나 설교 및 교리에 의하면 예수가 성자(聖子)이자 바로 성령(聖靈)의 신(神)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그러한 신비스러운 신의 감응을 받아 체험했다고 믿어 신의 축복으로 의심치 않고 간증(干證)하고, 하나님이 내려주신 성령의 축복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감사함의 마음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하고자 한다. 기도와 간구함의 내용들 가운데 건강, 치병, 신의 돌보심과 구원, 축복, 행복추구, 개인적인 문제해결요청과 기대감 등은 구복(求福)행위로서 기복(祈福)신앙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교회의 성직자는 바이블의 권위를 중심삼아 유일신 이름으로 예수신앙과 여러 형태의 죄 사함의 은혜, 하나님의 자녀, 사랑, 천국 등을 외친다. 그 반면에 무속인은 주어진 교재와 제도적 장치 없이 퇴마(退魔)의례와 구복행위를 다신(多神)의 이름으로 신들을 불러 모시고 굿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와 같은 사실에 유의하면, 부흥회의 형상이 석가모니와 예수가 수많은 군중을 향하여 설법하거나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과 유사하게 보인다.
불교에서 크게 집행하는 야단법석(野壇法席)은 깨우침을 전하기 위해 자력적인 노력이 왜 중요한 것을 설명할 때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다. 다만 불교의 석가모니는 창조주의 아들(성자)이거나 성령도 유일신도 아니다. 그는 정신세계의 깨달음(覺)과 각자의 내재적 불성(佛性)이 있음을 설파했다. 그 불성은 내 안에 있기에 스스로 찾아 깨우치는 자가 성불(成佛)한 자가 된다고 했다. 예수 역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중생)을 촉구하며 박애사상을 널리 펼쳤고 회개와 용서 등을 가르쳤다.
오늘날 성령부흥회운동은 점차 감소되고 있는 형국이나 여러 신앙단체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부흥회운동의 성격은 시대성이 감안되어 외형적으로 새롭게 단장(丹粧)되었다. 신앙인의 (감사)성금은 신앙단체의 부(富)와 초대형 교회를 이루었으나 지금도 세금이 부과되지 않고 있는 것이 목회자의 사례비(謝禮費) 즉 급여다. 특히 목회자들의 과도한 사례비와 부유함이 도를 넘었다. 예수의 청빈생활과 너무나도 배치(背馳)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생활상이 공익사회의 가치로 환원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다. 비록 한국그리스도교의 일부는 초대형교회에서 예수사상을 전파하고 생활 속의 축복과 구원을 외치고 있으나 교회의 피라미드조직과 금권(金權)형(形)의 카르텔추구 및 교회세습화는 교회부패의 첩경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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