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종교와문화의 습합(習合)사상

Ⅱ. 종교문화의 습합(習合)사상 2. 한국 서로마 가톨릭 ①~②

학담(學潭) 2019. 8. 21. 18:16

2. 한국 서로마 가톨릭


조선(朝鮮)시대의 한국 서로마 가톨릭은 유일신사상과 절대적 신념체계의 도그마와 신조를 고수(固守)했다. 조선의 가톨릭신앙인은 천주(天主)님의 이름으로 죽음도 불사하며 자국의 고유문화인 제례와 국가ㆍ사회체제의 역할과 기능을 거부했다. 가톨릭 신앙을 고수하기 위해서 조선을 당시의 청국(淸國)에 넘겨주기를 원했던 황사영(黃嗣永)의 백서(帛書)는 가톨릭신앙고백서로서 유명하다. 자국의 신앙인이 타국인으로 귀화하지 않으면, 국가는 그를 버리지 않으나 한국의 religion단체 가톨릭신앙고백서소속의 일부 성직자들은 상황에 따라 국가관을 버린다. 그래도 그들은 사후에 교회사에 위인 또는 성인으로 기록되고 추앙받고 있다. 


① 유구한 한국 역사가운데 한국 가톨릭교회사가 존재하고 있지만 가톨릭교회는 국가와 민족보다 교회우선주의의 길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한 한국가톨릭의 길은 2차 세계대전이후 잘못된 교회의 행위를 고백하며 화해와 평화를 주장한 ‘독일의 고백교회’와는 정 반대의 길이였다. 비교자체가 비록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은 있겠으나 서로마 한국 가톨릭과 교회사가 대한민국 국사와 국민위에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서로마 가톨릭교회사에 정하상(丁夏祥, 세려명 바오로)의 상제상서(上帝相書)1), 황사영(세례명 알렉시오)의 백서사건 등은 신앙차원에서 아름답게 포장되어 때로는 신앙의 범주를 넘어 교육용으로 설명되고 있다. 대학생들의 일부는 오늘날 신앙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과거 한국가톨릭 교회사를 진단하고 있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으로 바르게 조명되지 않고 있는 한국의 교육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조선뿐만 아니라 동양의 어느 국가에서도 국제적 협약에 의한 신앙의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시대문화의 격차가 크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국가적 역사교육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돌이켜보고 무엇을 바르게 유념하고 객관적으로 진단해야 할 점이 있는 가를 주시하고 분석하는 것은 또한 만인을 위해 필요하다.


② 조선의 가톨릭 신앙인들과 그들을 이끄는 인물들은 서로마 가톨릭의 신앙에 심취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실하였고, 그들의 선조와 부모, 지인 그리고 전통과 국가의식을 버렸다. 그들은 결국 조선왕조사에 반역죄로 다스려졌다. 서양 그리스도교의 악행으로 기록된 침략과 도굴 및 약탈사건은 한국교회사에서도 기록되었으나 학교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어 사건의 본질과 진실이 은폐된 상황에 놓여있다. 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인 발언은 삼가하고 있으나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은 예수의 핵심사상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설명한다. 진정성이 담긴 반성과 화해가 국가와 국제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