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神學)사상과 종교(宗敎)문화사상
그리스도교의 신학사상과 종교문화사상에서 문화상황화(文化狀況化)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1910년 영국 에든버러(Edinburgh)에서 열린 세계선교회에서 상황화(狀況化)라는 용어가 신학적 차원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 용어는 보다 나은 선교를 위한 선교지역의 현장화를 뜻하고 있으며 에큐메니칼운동(Ecumenical Movement, 교회일치운동)의 배경이 되었다. 그러한 운동을 통해 1948년 그리스도교의 세계교회협의회(世界敎會協議會, World Council of Churches, 약자 WCC)가 조직되었다.
상황화의 용어가 기존 서구신학의 근본주의와 보수성에 대한 공개적인 의문과 비판 그리고 혁신적인 대체개념으로 제시되면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 개념은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그리스도교의 제국주의적 문화시대와 세계 식민통치시대가 마감되고 신앙인이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용되어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부여됐다. 지금까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답습(踏襲)하던 기존신학(神學)과 신앙(信仰)단체의 사고방식이 서구 ‘그리스도교’라는 독특한 상황(context)에서 형성되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존재가치와 문화에 대한 시대적 상황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5단계의 상황화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은 일정부분 세계 그리스도교의 교회사이자 그리스도교제국의 통치문화사와 연관되어있으며 진행 중에 있다.
① 313년 콘스탄티노플의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에 의해 초대 그리스도교는 공인된 사상단체로서 새로운 시대상황을 맞이했다. 그 칙령은 그리스도교의 사상을 정치적 통치이념으로 수용한 시기이기도 하다. 초대 그리스도교사상에 필요한 기본적인 교리와 신조체계를 정당화시키고 보편화시키는 신학적인 작업은 절대적 자료빈곤이라는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이 주어졌다. 그와 같은 시대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초대 그리스도교는 교부(敎父)철학자들을 통해 그리스-로마문화와의 융화와 습합사상을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따라서 그리스-로마문화와의 동화와 융화과정에서 드러난 첫 번째 단계가 시대적 상황-내-그리스도교의 존재가 되었다.
② 476년 서로마제국의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Romulus Augustus, 재위 475~476)가 게르만 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Odoacer, 433~493)에 의해 강제로 퇴위 당함으로써 서로마제국은 멸망했다. 서로마제국의 황제권(皇帝權)이 사라지자 로마의 총대주교(=교황)가 황제권을 대행하면서 서로마제국의 가톨릭 교황권(敎皇權)이 등장했다.
서로마 교황청과 교부 철학자는 가톨릭주의(Catholicism)를 선포하면서 유일신을 숭상하는 신앙단체가 그리스도교이며 그리스도교의 신앙공동체가 유일한 religion이자 진리의 religion이라고 천명(闡明)했다. 교황청은 그리스도교대제국의 통치의 중심이자 세계 그리스도교대제국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유일성, 절대성, 교리, 신조, 사상 및 조직체계 등은 고대 교부 철학자, 중세(中世)교부 철학자들의 작업을 통해 점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들에 의해 교황은 예수의 권한을 대행하는 살아있는 신의 형상이자 신의 아들로 묘사되면서 그의 입지와 위격 및 통치권이 강화되었다. 교황의 권한, 권좌, 위엄 및 메시지 등은 세계 그리스도교대제국의 영역과 문화를 하나로 통치하는 수단이 되었다. 서로마 가톨릭교황의 절대적인 통치권은 근대화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었다. 이는 두 번째 시대적 상황-내-그리스도교의 존재와 가치로 존치(存置)되었다.
③ 2차 세계대전 후 그리스도교의 근본주의적 교리체계가 무너지면서 서구의 젊은이들이 사상적 방황의 시기를 맞이했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지난 그리스도교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폭넓은 회의와 반성과 성찰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조치가 다양한 부분에서 일정부분 이루어졌다. 기존의 근본주의시대에서 벗어나 현시대에 합당한 사상을 접목시켜 교리수정작업이 시작되었다. 서구의 학계와 정치권은 시대적으로 혼란한 사회적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내일의 변화과정을 맞이하기 위해 세 번째 시대적 상황-내-그리스도교의 존재와 가치가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그것은 또 역사적 문답과 주어진 현 상황의 모습에 직면했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직시할 수 있도록 수많은 지식인들이 협조하며 또한 앞장섰다.
정치권에서 생명존중과 평화사상이 제기되었고 그에 수반된 혁신적인 사안은 그리스도교단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독일 나치정권에 일조하거나 조력자 역할을 한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직자들과 지식인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그리스도교의 자체적 개혁이었고 교단과 교단의 성직자는 자체 내 정화운동에 앞장섰다.
정화운동은 공동체사회의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켰으며 국민들의 큰 호응과 지지를 받았고 그들은 쇄신운동에 동참했다. 회개에 합당한 성찰적 노력은 사회정화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학자들이 대거 동원되어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공동체(사회)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헌신했다. 그들은 자아반성과 공개적인 비판을 통해 사회적 통합사상과 성숙의 길을 모색했다. 그 시대의 안목에서 교리가 다시 수정 보완되었다. 바이블 구약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신의 이름 여호와대신 보편적 개념으로 신(the God)이 널리 통용되면서 전쟁을 멀리하고 평화를 준수하는 사회적 교육이 시작되었다.
종교문화경영(지도자학)의 차원에서 신약 예수의 평화사상이 주도적으로 강조되고 주장되면서 동양철학사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만남의 대상이 불교가 되었고, 다른 신앙단체들에게도 제한적 관용이 적용되었다. 유럽 및 독일에서 신앙생활과 활동에 불편한 요소가 정책적으로 완화되었다. 하지만 지역적 상황과 세계적인 패러다임에 맞추어 서구의 그리스도교가 실시하는 다른 신앙단체에 대한 사상적 검증작업(檢證作業)은 오늘도 신중하게 진행 중에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맞이한 세 번째 시대적 상황-내-그리스도교의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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