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리스도)교회의 역할
필자는 그리스도교의 나라 중에 독일의 그리스도교회, 종교사회와 교육을 설명하고자 한다. 국민의 각성을 위해 ‘분쟁케 하는 교회’와 ‘화평케 하는 교회’의 모델이 교육용으로 제시되었고 지금도 그 근본정신과 교육이념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한국그리스도교회와 한국(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떠한지 성찰적 안목에서 이해되었으면 한다.
1) 분쟁케 하는 교회
① 그리스도교 형제(종파)들 간의 분쟁과 전쟁, 단죄의 피를 부르고 검붉은 피를 뿌리게 하는 폭력적 행위가 증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더 이상 놀라지 않고 관심 밖으로 돌리는가? 그것은 서로가 용서하지 않는, 또 용서를 구하지 않는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인 틀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과연 예수의 말씀대로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는가? 하고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그리스도교회사와 연관된 전쟁사는 예수의 복음과 상반된 추악한 사건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1950년대 독일 신학자 한스 요아킴 이반트(Hans Joachim Iwand)는 그의 논문『살인하지 말라 Du sollst nicht töten』에서 교회정화론에 관한 의미 있는 해석을 내놓았다. 핵심부분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하나님의 영(靈), 그 영이 수면위에 떠다니고, 그 안에서 우리는 분투하고 침몰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분투하고 침몰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통하여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들의 확고하고 평화스러운 성곽(城郭)을 가진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성곽에서 일어난 비참하고 참담한 사건, 전쟁이라는 사건들이 오늘날 다시 일어나야만 하는가? 예컨대 교회의 문서, 공공성을 충족시킨다는 문건 내에서 어둠의 영들이 아직도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메시지는 어둠의 영들에 의해 대개 통치되기 때문이다. 그 어둠의 영들이 우리를 암흑에 세워둔단 말이냐? 여기서 그 영들이 실제로 우리의 땅을 스쳐간다면? 그 땅에서 우리가 살고, 고통당하고, 절망스러워하면서 (휘감기며) 감돌았던 높은 교세의 영역, 그리고 그 교권의 자리에서 ‘사건’으로 상승되는 범람의 물결, 그러한 홍수가 넘쳐흐른다. 이렇게 험악한 파도와 맞서 싸우면서, 고통당하면서, 몰락해가는 인간들 …
우리는 하나님의 영과 밀물과 썰물 사이라고 하는 어떤 특별한 자리에 우리들의 보초병을 이주시켜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들은 아주 생명력 있는 모습과 몰락하게끔 만드는 울음소리(鳴動)가 상반적으로 표호(漂號)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아주 위험스러운 자리는 수심 깊은 물이며 그 물이 교회라는 배 안에 쇄도하여 아주 침몰하게끔 유도해 내기도 하는 곳이다.
주시하여 본 것처럼 여기서 이반트의 핵심사상을 종합해 보면, 서양인에게 교회는 검(전쟁)과 평화라는 양태론적 상징이자 역설적 산실인 반면에 종교적 희망의 보루(寶樓)가 된다. 그래서 그들의 질의응답이 때로는 모순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리스도교 국가끼리 전쟁할 때, 그리스도교의 성직자들은 자국의 승리를 위해 기원한다. 말없는 신은 그 모습 그대로 침묵으로 일관한다. 유럽사회에서 널리 사용되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속담이 있다.
‘시 비스 파켐, 파라 벨움(‘Si vis pacem, para bellum!’). 즉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 이 주술적인 말은 마법의 용어로 때로는 정치, 사회의 용어로 유명하다. 요하킴은 교회비평과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전쟁과 평화 그리고 승리를 위한 인간의 간청과 축복 그리고 결과에 대한 질문! 그러한 질문은 바로 오늘날 다시 새롭게 우리 가슴에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그리고 한꺼번에 옛날 마법이 다시 존재한다. 그 외에도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아직도 사건을 통해 스스로 반증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즉 정당한 전쟁에 대한 연설 - 오늘날 우리는 무엇이 정당한 전쟁인가를 확정할 수 있는 것처럼 - 그리고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사상이 다시 존재한다. 그런 사상은 하나의 이념적인 장벽이며 그러한 장벽이 또한 화평추구를 방해하는 종교적 지배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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