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그리스도교)인에게 올리는 글

2) 화평케 하는 교회 ②

학담(學潭) 2019. 11. 2. 12:36

②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의 분신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교회, 교회의 평화적 외침은 전형적 가톨릭식의 보편성 - 공의 - 평화에 대한 개요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하나의 부동의 원리였다. 그러나 그 공의로운 원리가 교리의 주장이자 정치 쪽으로 성장했을 뿐, 사회적으로는 넓게 펼쳐지지 않았다. 교회는 세상에서 문턱 높은 권좌의 상징이었고 서민에게는 환상적이고 두려운 속죄이자 심판의 장소가 되었다. 그런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만민이 기도하는 사회적 공공단체로서의 모습을 퇴색시켰으나 그의 기능은 과대 포장되었다. 그에 대해 사회나 교회의 입장 또는 사회와 교회의 공동언급으로 제시되고 밝혀져야 할 것이 또한 신앙인의 새로운 이해와 입장이 되었다. 

교회를 사회의 한 인격체로 비유해 보면, 그것은 개체적이든 단체적이든 간에 사회의 영성체로서 한 구성원이 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얼굴이요, 영혼의 부활을 잉태하는 곳이다. 때문에 교회는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탄력적으로 담지(擔持)할 수 있게 하는 영역이어야 한다. 그러하지 않은 교회라면 그곳에는 그 어떤 법리적 제도와 사건 등에 대한 모순이 가득 찰 것이다. 독일 나치정권에서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참상을 목격한 이반트는 교회정화와 평화를 위해 결단해야 할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인 안타까움과 고통스러움을 이렇게 호소했다. 

 

우리는 비록 평화가 외관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지라도, 미래를 향한 희망이 보이도록 시도해야 한다. 증오하지 않음이 곧 살인하지 않는 것이다. 평화를 사랑한다는 차원에서 오직 그리스도교적 이라는 이념은 고립되기 쉽고 무의미하다. 교회는 신의  용서를 구하고 호소하는 곳이다. 그렇게 호소할 수 없다면? 그러한 호소에서, 예수의 평화사상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다면? 그것은 예수 없는 교회이며 예수와 무관한 별개의 사조직과 무관하지 않다. 교회의 기능과 역할이 올바른 예수의 평화사상과 실천을 말하고 실천하는 곳이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인류의 생명과 세계적 공동체 삶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끔 이끈다. 그러한 공동체적 사상과 화평케 하는 삶은 네 이웃과 하나 되게 하고, 상처를 아물게 하며, 자신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재생하게 하며 상호 유익한 정신문화사적 대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리하면 제 3의 관객인 우리는 다시 그곳에 또 다른 뜻있고 의로움을 즐겨 제공하여 화평케 할 수 있도록 공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