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힘의 종교에서 본 역의 합일(Coincidentia Oppositorum)론
힘의 종교라는 멍에가 프로테스탄티즘에게도 씌워졌다. 개신교의 본래 복음정신은 기형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었다.
1517년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역시 정당한 검(전쟁)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독일의 농민전쟁(1524~1526) 뒤를 이어 신ㆍ구교 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발전된 독일의 30년 전쟁(1618~1648) 등은 유럽사의 악몽이자 힘의 종교를 양성시키는 검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그러한 현상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종교적 힘의 논리로 자리잡아가면서 하나님의 영성을 추구하는 신앙인들에게 주관적인 안목과 이분법적 사상을 더욱 부추겼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새로운 신앙공동체로 굳게 자리매김 되면서 개신교를 국교로 선택한 나라들이 많아졌다. 개신교 내부에서 루터의 비복음적인 종교개혁을 비판하면서 일어난 종파들과의 분쟁과 전쟁들, 선교(宣敎)로 위장한 식민지 정책 그리고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빼앗은 땅에 저희들의 나라를 세운 청교도주의(Puritanism) 등은 살상무기를 앞세운 힘의 종교에서 발생된 사건들이다. 힘의 종교가 지니고 있는 두 얼굴이다. 그것은 예수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아 처형시키는 가증스런 십자가의 형상이 되었다. 또 다른 그리스도교의 모습이 가톨릭과 공유하며 착취의 시대가 전개되었다.
그리스도교는 다른 그 무엇보다 절대적인 유일신 사상, 종교적 우월성, 절대성, 그리스도교회(국가)의 신자화 즉, 그리스도교인화 그리고 우상타파 등에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데 있다. 그와 같은 믿음과 힘은 성직자가 천국열쇠를 받아 손안에 넣은 ‘구원의 대리자’로, ‘구원으로 이끄는 선한 목자’로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시몬 베드로)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 19)
이 땅에서 예수의 말씀으로 받은 천국열쇠가 지역적 경계와 영역을 초월하여 맺고 풀 수 있다는 영성적 황금열쇠로 남겨졌다. 그러한 정신적 열쇠는 산상수훈복음을 지키는 거룩한 열쇠이자 박애사상을 실천하는, 모세율법을 완성시켜 예수의 사상을 온전히 이루게 하라는 지상과제의 영성적 열쇠일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성직자들은 실제로 천국의 열쇠를 상징하는 열쇠를 만들어 옆에 차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러한 천국열쇠의 상징은 또한 언어를 초월한 그 이상을 부여 받은 것으로 여겨 소중하게 지니고 있다. 로마-가톨릭 교황청과 교황청의 일부 측근 인물들이 정치적 권력과 여러 가지의 재물을 공적 또는 개인적으로 갖게 되면서부터 하늘같이 높은 권좌의 형상이 시작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행위가 엄격히 금지 되었으나 그 당시의 그들은 권력의 맛과 부의 향유를 누리면서 교회의 본래 기능을 망각했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아주 낮은 곳에서 실행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불행한 사건들을 잘 알고 있는 일부 프로테스탄티즘의 교회나 인물들이 가톨릭의 형상을 답습해 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예수가 광야에서 40일간의 혹독한 수행과 시험을 마치고 말을 타고 호산나를 부르는 군중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했다.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이윤을 남기고 장사하는, 부패한 교회모습을 보고 결단을 내렸다. 그는 억양을 높여 분노했다. 과격한 그의 언행(막 11:15~17), 골고다 산상에서 기도하는 예수의 모습과 절규에 가까운 그의 목소리에 그리스도교인과 교회는 적어도 한번 정도는, 아니 수차례 귀를 기울어야 한다. 그들은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이 무참하게 무너질 것을 예견하고 울면서 말씀하신 것(눅 19:42)을 잊었는지!
힘의 종교를 지향하는 신앙단체, 교회는 이웃사랑, 용서, 산상수훈복음,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 뺨도 돌려대는 것도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원수 사랑이니 화평을 운운하는 것은 힘없는 자들이나 행하는 것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나 용서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비웃듯이 문제점이 발생되면 검을 휘둘러 쉽게 해결하려고 했다. 산상수훈 복음은 허공에 뜬 풍선처럼 되어 땅만 바라보는 교회와 신자들은 그 복음의 진면모를 무지개처럼 여겼을 것이다.
다행히 소수의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국내외의 시대적 변천과 발전하는 과학적 진실 상황 앞에서 현실적응을 모색했고, 혹독한 자정(自淨)의 시기와 역사적 과오의 일부에 대해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가졌다. 그리스도교는 2차 대전의 결과를 지켜보았다. 서로마 가톨릭은 1960년대부터 타종교의 내재적 신념가치와 고유성을 수용했다. 1963년 교황청은 한국 가톨릭에게 한국의 문화적 특징을 감안하여 금단의 열매로 여겼던 조상숭배도 허용한다는 칙서를 내렸다. 한국 가톨릭은 제례(祭禮)의식 때 1980년도까지 아브라함의 이름으로 기도했으나 그 의식은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2000년도부터 신(God)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2차 세계대전에 패망한 독일의 그리스도교회는 글자그대로 좌불안석이었다.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이 히틀러정권과 야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독일의 예수회 가톨릭 신학자 카알 라너(Karl Rahner, 1904-1984)가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하나의 종교만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종교 신학의 차원에서 궁지에 몰린 가톨릭신학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신학적 관점에서 연관된 것으로 파악된 것 들 중에 특히 종교철학과 종교교육(영성과 계시 포함)에 관한 글 그리고 강의 등은 가톨릭 신앙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그가 내세운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es Christentum)은 자기 자신의 양심을 따르고 행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의 신앙에 이르러 영생할 수 있다고 하여 화제(話題)를 불러일으켰다.
한편 개신교 측에서도 샛별같이 신학논단과 현실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등장한 인물이 카알 바트(Karl Barth 1886-1968)이다. 그는 카알 라너와 같이 개신교의 사상개혁과 교회개혁을 외친 스위스의 학자였다. 그는 나치 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고백교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카알 바트는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총회에서 에큐메니칼운동(Ecumenical movement)이 논의 될 때, 그 운동을 위한 세계교회협의(WCC)에 참여했다. 그의 저서 ‘교회교의학’은 유명하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일반인 계시(啓示)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을 신학적 모토로 삼아 전개한 교회중심의 신학이다. 그는 ‘교회중심신학’을 정면에 내세우며 전쟁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자유주의신학과 결별을 분명히 했다. 전쟁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바이블에서 예수의 말씀과 실천의 필요성이 칼 바트에 의해 ‘교회중심의 실천신학’ 으로 탄생되었다. 그러한 실천신학은 그리스도교회와 신앙인들의 범주를 넘어선 글로벌한 지구촌의 시대정신으로 발전되었다.
현재 서구 그리스도교는 타종교와의 대화와 문화교류를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이고 힘의 종교라는 틀에서 ‘유화적인 종교’로 방향을 점차 선회시키고 있다. 그들의 잘못된 바이블이해와 신학적 교리(도그마)가 수정되지 않으면 미래도 불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거에 검을 사용했던 그리스도교가 긍정적인 반전(反轉)의 방향으로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맞게 지향해야 한다. 사랑과 용서, 관용과 배려, 정의, 진실, 봉사, 나눔 평화 등의 길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그 길은 변화된 시대적 상황과 요청에 의한 최소한의 선택이다. 그러한 선택의 길은 새로운 마음의 옷으로 갈아입고 순수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세계의 문을 두드려서 열리게끔 하는 노력이다. 그 마음은 다시 성장 발전하여 인류를 사랑하는 생명의 불꽃이자 영성의 횃불로서 어둠의 세계를 밝힐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의 합일’을 아는 것은 성찰이자 새로운 방향으로 그간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 이에 우리는 잠시 눈여겨 볼 것이 있다.
널리 알려진 유럽의 중세 철학자, 교부신학자이며 독일의 추기경인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Nicolaus Cusanus; 1401~1464)는 자신의 명제 ‘역의 합일(Coincidentia Oppositorum)’을 알렸다. 그것은 산적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의 모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명제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는 극과 극의 모순(矛盾)이 있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러한 모순이 모순 없는 모순으로 새롭게 변화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해야 했다. 그러한 가능성이 인과적으로 존재하고 그 필요성이 인류공동사회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또 내일의 밝은 문명사의 법칙임을 깨달았다. 이 부분에서 어두운 교회사의 길, 전쟁사의 길, 투쟁과 전쟁을 통한 제도적 힘의 종교가 구습에서 탈피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 사랑과 화평이 넘치는 신앙공동체가 교회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사랑과 화평이 넘치게끔 이끌어 가는 힘을 부여해주고 함께하는 공동체로서의 종교는 영성적 활력소가 필요하다. 그 활력소는 순수한 종교의 힘이다. 그 힘은 신선한 이미지로 내 이웃부터 다독거리며 부단히 실천하는 길이 되어 본래 복음의 종교, 화평케 하는 종교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한다.
인간에게 내재된 순수한 영성적 불꽃을 밝히는 종교(성)의 힘은 승화된 성스러움으로 기화(氣化)되어 모든 종교와 인종을 초월하여 인류의 생명을 살리기 때문에 인류문명사에 밝은 빛을 선사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구의 종교사회문화가 종교 간의 갈등과 전쟁, 세계대전의 원인과 진행과정, 결과, 성찰 및 미래지향적인 길이 지속적으로 연구 검토되었다. 세계사에서 전쟁의 참혹한 결과를 그대로 보여준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특히 서구인들 중에 많은 독일의 지성인들은 전쟁에 대한 수많은 문제점을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면서 자아 성찰했다, 그리고 각성의 문을 두드렸고 평화를 추구했다. 과거 전쟁의 논리가 만연했던 곳에서 각성이 일어나고 성찰된 마음에서 평화의 이념이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적 과정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한권의 바이블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말씀’과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말씀’이 혼재되어 들어 있음을 이미 위에서 살펴보았다. 재론하면, 예수는 한편으로는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였다. 이것은 화평을 주장한 예수의 패러독스와 같은 말씀이다. 4대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대제사장의 종 말고가 예수를 잡으러 왔다. 시몬 베드로는 긴급하고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예수의 신변을 보호하고자 검을 사용했다. 검으로 말고의 귀를 잘라버린 베드로(요 18:10), 땅에 떨어진 그의 귀를 다시 붙여주고 “검을 사용하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마 26:51-52, 눅 22: 49~50)고 하면서 베드로를 엄중히 꾸짖었다. 그러한 예수의 진심 어린 충고를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의 신앙인은 어떻게 이해했고 또한 실행하였는가? 하지만 전체적 맥락에서 예수의 언행을 살펴보면 “검을 사용하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전언(傳言)은 21세기에도 변함없이 평화를 사랑하는 인류사에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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