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두 자루의 검 이론에 대하여
마니교에서 근 10년간 생활했던 아우구스티누스가 삼위일체론을 제기하여 그리스도교가 수용했고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의 삼위일체론은 오늘날에도 널리 신학적 논구의 대상이자 신앙고백의 주춧돌이 되었다. 그가 말년에 그리스도교의 전파를 위해 전쟁의 필요성을 정치적인 관점에서 연구된 것은 의외의 모습이었다. 그의 교회론에서 주목되는 것은 특히 정치, 종교,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의미해석이다. 그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역,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몸, 그분의 신부,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라고 하면서 ‘교회를 떠나서 구원은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 또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한 것은 유명하다. 그는 정당한 전쟁이라고 판단되어도 심사숙고하고, 이교들을 응징하는 차원에서의 무력사용은 신중히 다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중세 교회의 성격이 지배적이고 정치적 성격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었다. 정치적 중재이자 응징으로서의 정당한 전쟁이 점차 확대해석 되어 ‘성전(聖戰)’으로 공고히 되었다. 서양역사에 정당한 전쟁으로 여겼던 사건이 교회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게 된다. 교황(Papst) 그레고(Gregor, der Große; 590~604)는 아우구스티누스주의를 주목했고, 세계적 로마-교황청권위체제를 조직하였다. 그러한 조직을 통해 종교전쟁이나 성전은 분명한 명분아래 정당성이 부여된 전쟁의 조건으로 그 역사적 진면모가 내심 감추어져 있다. 유럽의 학자들은 ‘그러한 역사를 기꺼이 정치적 아우구스티누스주의’라고 말한다.
전쟁의 명분이나 목적 등은 교황의 권위적인 차원에서 결정되었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가톨릭)교회의 해결요청에 의해 모든 절차가 진행되었다. 교황의 결정은 모든 정당성의 시금석이 되었고 그는 세계정부 최고의 권력을 담지(擔持)하는 자가 되었다. 교회사에서 레콘큐이스타(Reconqista; 8세기에 이루어진) 사건은 적합하다고 인정되었다. 그 사건은 이베리아 반도(Iberia 半島)인 아프리카 서북부 마우리(Mauri : 무어)족이 살고 있는 지역의 재침공이었다. 그리고 교황은 십자군전쟁, 기사도집단형성 등을 ‘정당한 전쟁’이기 때문에 성전(聖戰)으로 인정하였다.
비록 교황 니콜라우스 1세(858~867)가 정당한 전쟁의 성격을 오직 방어적인 전쟁에 의한 것으로만 승인했으나, 그것은 서구의 교회사나 역사에 아무런 효력 없이 사장된 문서로만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정당한 전쟁과 성전의 논리와 의미는 선교정책의 이름으로 세계패권주의의 초석을 다지며 추후 식민지정책으로 미화되었다.
1) 두 자루-검-이론
예수의 제자들은 검(劍)을 소지하고 있었을까? 바이블에 두 자루-검 소유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그 중에 특히 베드로와 연관성을 가지고 제시되고 있다. 두 자루-검-이론은 차후 로마 교황권에 의해 좌우되면서 전쟁의 정당성에서부터 성전으로까지 발전되었다. 베드로가 젤롯 당원이었다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어 먼저 유대교의 종파유형과 그 의미를 간략히 요약하면서 한국의 역사관점에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대교 종파(宗派)에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헤롯당, 에세네파, 젤롯당(=열심당)이 있었다. 그들은 로마국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AD 70년)까지 존재했다.
① 바리새인(Pharisees, Pharisäer)은 완고한 율법해석과 철저한 율법준수를 고수했다. 유대인의 헬라화(지속되는 헬레니즘 Hellenism)라는 동화정책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전통(헤브라이즘 Hebraism)을 고수하고 승계하고자 하였다. ‘바리새’의 개념은 ‘헬레니즘에서 분리됨’이다. 바리새인의 뜻은 ‘헬레니즘에서 분리된 사람’으로 해석된다. 바리새파에 대한 언급은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The Antiquities of the Jews)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바리새파는 유대국의 하스모니안 왕조(Hasmonean dynasty) 요한 힐카누스 (John Hyrcanus B.C. 134-104)의 통치시대부터 이어졌다.
② 사두개인(sadducean, sadduzäer)과 바리새인은 예수에게 수차례 질타당한 적이 있어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두개의 어원은 솔로몬시대의 제사장 차독(Zadok)에서 또는 사둑(Sadduk)에서 나왔다고 유추된다. 사두개파의 주류는 제사장 가계(家系 행 5:17))이며 그 외 귀족과 정치지도자들이 포함된 단체였다. 그 단체의 종교적 권리는 성전관리 및 제사의식집행 등이다. 사두개파는 몸의 부활, 영, 천사(막 12:18, 눅 20:27, 행 23-8)존재를 부인하고, 종말론에 관심 없는 현실주의자들이다. 사두개인은 구전된 율법은 부정하고 글자로 남겨진 토라(Thora)만 인정한다. 그들은 유대종교와 정치적 책임을 감당해 내어야할 시대적 역할로 기대되었으나 로마정치권과 일정부분 결탁해 부귀와 권세를 누렸다. 사두개인의 예수살해음모(막 14:1), 백성을 현혹하고 미혹하는 예수의 혐의 주장(요 11:47-54, 눅 23:2-4, 눅 23;2-4) 등은 관심을 가지고 헤롯당과 연계시켜 연구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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