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학자들도 단군 고대사복원에 관해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세종대왕(1397~1450) 시대에 단군고조선사(檀君古朝鮮史)를 연구했 고, 1215년 승려 각훈(覺訓)이 편찬한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을 참고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군고조선사의 연구는 점진적(漸進的)으로 지속 하였음을 역사적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1403년 권근(權近)의 「동국사략(東國史略)」, 김종서가 세종(世宗 재위 1418~1450)대왕의 명을 받아 1438년 편찬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1485년 서거정(徐居正) 의 「동국통감(東國通鑑)」, 1778년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 등의 문헌(文獻)에 단군고조선사가 일정 부분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그 외의 고조선사(古朝鮮史)에 관한 연구 자료는 주변국 명·청나라의 정치적 간섭과 정적(政敵)에 의해 소각(燒却)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수많은 역사적 고서와 문화재 등이 조선 근대화 시기에 강탈 (强奪)당해 서양으로 반출(搬出)되었고, 일제강점기에 약탈(掠奪)당했다. 그런데도 조선의 유교 문화는 현대사회의 종교문화와 사상으로 일정 부분 존재하고 있다.
조선의 국정철학과 종교문화경영은 유교의 천명(天命)사상과 하늘을 공경하는 천제(天祭) 의식과 연계되어 있다. 나라에 가뭄이 들고 사회가 혼란하면 임금 자신이 부덕의 탓으로 여기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하늘에 천제를 올렸다. 유구하게 전승되는 제천(祭天)문화에서 단군 고대 사문화의 잔영(殘影)이 발견된다. 유가(儒家) 사상이 조선(朝鮮) 시대에 500여 년 동안 국교(國敎)로 정착되어 유교 문화를 꽃피웠다.
서구 학자들 이 사용한 사라진 신(deus otiosus)의 의미가 있었지만, 조선유교의 하늘님 숭배 사상은 제천의식과 연계되어 천신제(天神祭) 문화의 의의가 새로워 졌다. 그로 인해 천명(天命)의식이 다시 조명되고 천제(天祭)는 유교의 종 교문화로 승계되었다. 유교 문화는 공동체 사회에서 선덕(善德)을 베풀 수 있는 윤리 도덕적 의식함양과 충효(忠孝)와 충서(忠恕)를 실천하도록 이끌었다. 유가(儒家) 의 민본(民本)사상과 가르침은 국가경영정책의 핵심이 되었고 도덕천(道 德天)사상은 천명의식과 더불어 국가정책의 이념과 행정 수반의 일체를 뒷받침했다.
유교는 도덕군자의 이상형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선비를 길러 냈다. 그들은 제천의식으로 왕조의 종묘사직(宗廟社稷)을 지켰으며, 난세 에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을 유지했다. 유교가 정치이념과 생활문화로 제도화되고 정착되면서 유교의 하느님 (天) 사상은 자연천(自然天)에서 인격천(人格天)의 모습으로, 생명을 잉태 하고 양육시키는 힘의 실존으로, 하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생활문화로 승화되었다. 즉 하늘님은 비(非)인격신이지만 상제(上帝)라는 인격 신의 형상으로 묘사되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종교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하늘님이 어질고(仁), 의(義)롭고, 예(禮)의 바르며, 지혜롭고(智) 신의(信義)를 지키는 사람을 보우(保佑)한다는 사상은 유교 문화경영의 차원에서 형성된 대표적인 키워드이다.
중용 제1장에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하늘이 명하여 내려 주신 것이 性이며)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性에 따르는 것을 道라 하고), 수도지위교 〔修道之謂敎; 도(道)를 이루어 끝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교(敎)라고 한 다〕”라고 제시된 것은 교육철학의 핵심인 로고스(logos)의 기능을 설명한 것이다. 그와 같은 기능이 공동체 사회의 인성함양교육과 접목되어 국가경 영철학을 발전시켰다. 공동체 사회는 천지인(天地人)이 하나 되는 합일 사상과 더불어 발전했다. 그러한 사상은 그 어떤 하나의 존재가 만물의 일부이자 동일체가 된다는 관계인식을 고취해 만사 만물을 통찰적인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었다. 도덕의 핵심인 인(仁)은 사람 사랑으로 유교의 정체성이다.
유교의 존재론적 삶은 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 군자(君 子)의 길로서 로고스의 기능이기에 범종교적 경험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러 한 학습과정과 경험의 길은 국가경영철학의 실체가 되어 많은 인재(人材) 를 양성하였다. 수많은 유교 문화의 유적 가운데 일부분(종묘, 창덕궁, 수원 화성, 조선 왕릉 40곳,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의 양동마을, 남한산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교의 인재로 가름하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대한 교육은 국가경영철학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조선의 유교는 성리학(性理學)을 발 전시켜 사람다운 사람인 도덕군자의 길을 제시하였고, 그 길은 선비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선비정신은 국가와 사회의 질서, 안정을 이루는 보이지 않 는 준법의식이자 양심의 매개체로서 역할을 하면서 그나마 조선왕조를 지 켜온 민중의 지팡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이상형과 사상적 기반이 역동적인 세계 근대사의 흐름인 서구 그리스도교의 선교정책과 열강의 식 민지정책에 의해 부침의 시기를 맞이했다.
조선왕조의 운명은 열강의 제국주의적인 침략 사상과 서구의 근대화 물결에 따라 심히 흔들렸고 요동쳤다. 전통문화와 근대문화와의 충돌은 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누란지세(累卵之勢)와 같은 위기에 봉착했다. 그 당시의 조선왕조와 수많은 선비·백성들은 급변하는 세파(世波)에 적응하지 못함은 물론 국력이 쇠약해지면서 제대로 대응할 수 없어 내ㆍ외적인 종 교문화경영에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한 시대의 상황에서 이어지는 조선인의 정체성 와해와 사상적 공백이 커지면서 조선의 서로마가톨릭 신앙인은 유교 사상과 이념을 상실하였다. 그들은 신앙적 신념을 앞세워 국가보다 가톨릭 우선주의로 나아가다가 여러 형태의 역사적 불의(不義)의 사건들을 발생시켰다. 하지만 그러한 사건들은 교회사적인 차원에서 호교론(護敎論) 방향으로 평가되어 토착화된 유교 문화의식과 상충(相衝)되었다.
한국 근대사의 한 축을 이룬 서구 그리 스도교의 전파와 정착과정은 유교의 쇠태기를 가속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 으로 유교 학자 최수운은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을 주장하며 서학과 버 금가는 학문이 동학(東學; 차후 천도교)이라고 했다. 동학사상이 하나의 단 체로 형성된 후 각양각색의 신앙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유생 등 많은 사람이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형태로 항거 (抗拒)하였고, 죽음도 불사하며 투쟁한 그들은 오늘날 애국지사로 존칭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1905년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시켜 대한제국 의 외교권을 강탈했다. 1910년 일제의 최고 식민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 (朝鮮總督府 1910~1945)가 서울 광화문 부근에 설치되었다. 일제는 조선 인에 대한 종교문화경영을 무단(武斷)정책으로 강력히 압박했으나 반발이 심해 차후 문화(文化)정책으로 전환했다.
일본의 회유책은 극에 달하였고, 그러한 술책(術策)에 넘어간 여러 단체의 부류도 많았다. 해방 이후 친일파의 청산작업은 이승만 정부 시절부터 첫 단추를 잘 못 끼워 지금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역사적 사건들이 산적(山積)해 있다. 올바른 후진 양성만이 답이라는 판단 아래 한국 땅에 여러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그중에 유교의 이념으로 태동한 대학이 성균관대학이다. 특히 조선의 유교에서 중요시하는 종묘(宗廟)는 세계인에게 문화의 고유성과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종묘제례 (宗廟祭禮)와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세계에서 오직 한국에서만 볼 수 있어 그 존재감은 귀하기만 하다.
유교 사상은 한국인의 정신문화 사상과 실생활에 직결되어 있다. 유 교의 특징은 서구의 신앙단체와 같은 유일신 사상을 중심으로 구원과 심 판, 부활과 영생 등의 기복적인 교리가 없으며, 신앙의 대상도 없다. 따라서 유교가 인위적으로 교세 확장을 위해 일종의 신앙단체로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지만 사상단체이자 생활철학으로서 사회적 관계기능의 역할을 담 당하고 있다.
유교 사상과 정신이 소멸하지 않고 한국 공동체 사회문화에 유ㆍ무형으로 중요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유림(儒林)이 어디서, 어떻게,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또 그런 파악과 질문보다 과연 기타 종파와 신앙단체를 초월 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떠한 모습으로 혁신되어 우리 사 회에 다시 드러날 수 있는가? 바로 그런 시대 상황분석과 인식, 대책의식에 대해 현대판 유교가 더욱더 큰 핵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유교는 신앙단체가 아니고 사상단체이기 때문에 한국의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고, 그들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어야 그나마 체면 을 유지할 수 있다. 현대적인 유교 문화로 혁신되고 발전된 가칭 신(新) 유 교 문화의 보급이 필요하다. 그 신 유교 문화는 애국(愛國), 애민(愛民), 애 족(愛族) 정신, 충서(忠恕), 윤리 도덕적 실천 교육 등에 탄력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시대에 걸맞은 문화, 새롭게 변화된 21세기 신유교사상과 문화가 유일신관(唯一神觀)에 입각한 서구의 제도적인 religion과 근본적 으로 다른 모습으로 발전된 공동체 사회에, 국제적인 사회에 도덕실천의 정신문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21세기 유교의 혁신경영과 인재경영, 나아가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전략적 경영 등은 과거로부터의 회귀가 아니라 특히 현주소로의 상황 내 존 재가치를 발휘해야 한다는 데 방점(傍點)을 찍어야 한다. 현존하는 사회와 국가경영에서 빠지지 않는 정신적 중핵이자 공동체 사회의 법과 질서를 유 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과 인성 함양교육이 유교 정신과 문화에 포함되어 있다.
대가족에서 소가족, 핵가족으로 변해가고 맞벌이 부부가 필요한 이 시대에 걸맞은 도(道)와 덕(德), 보편적인 예법이 국민에게 자연 스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듬어 교육해야 한다. 신선한 마음으로 격조(格 調) 높은 품위를 갖추어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도덕과 예법이 공동체 사회에 항상 신선한 매개체로 국민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그 것은 유교의 경전(經典)이자 유교 이념의 실천 사상 가운데 하나인 대학 (大學)의 덕재신(德在新)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인은 유교적 정 신문화의 유산을 가져 그의 종교성 또한 유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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