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生日)
생일(生日)은 글자그대로 세상에 태어난 날, 자신의 모습이 처음으로 드러난 날, 자신의 호흡 기관을 통해 스스로 호흡(呼吸)하기 시작한 날이다. 그때의 모든 유아들은 천지부모(天地父母)님께 출생신고를 하려고 눈도 뜨지 않은 채 가파르게 숨을 내쉬며 큰 소리로 울면서 숨을 쉬기 시작한다. 한줌 토해내는 그들의 첫 번째 생명의 울음소리는 이 세상에 고고한 생명의 찬가로서 천지를 향해 울려 퍼진다.
궁금한 것은 아기가 태어 날 적에 왜 울음으로 출생신고를 할까? 갓 태어난 아기의 천진무구(天眞無垢)한 소리가 우리에게는 왜 울음소리로 들리는지? 그 소리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가? 울음소리는 자신의 호흡기 기능을 스스로 발휘하기 위한 첫 번째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신체적 신호탄인가? 고고한 울음소리는 생명의 실상으로 대자연과 함께 조화로움을 이룬다.
잠시 후 탯줄을 자르고 나서 어머니의 품에 안기어 생에 처음으로 모유를 먹으면서 출생신고식은 마무리 된다. 이때의 모습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미성숙된, 나약한 존재이기에 만물의 영장으로 성장과정과 스스로 자립하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의 기간도 필요하다.
생일날이 귀빠진 날이라고도 한다. 당연하다. 모태(母胎)에서 출생할 때 머리부터 나와야 정상 분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귀가 오장육부(五臟六腑)와 연계되어 있다고 보고 연구하는 동양의 한의학적 진단과 치료는 지금도 병행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나를 나아주신 부모님께 한없이 감사한 마음을 고하는 날이 또한 생일이다.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고 아름다운 대자연 속의 한 몸, 하나의 생명체로 함께 살아가는 내 모습을 생각하며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는 좋은 하루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생일날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은 더없이 성숙된 모습의 날이기도 한다. 모성애(母性愛)는 세계인이 공감하고 있어 어머니의 자애롭고 위대한 사랑은 특히 그의 모든 자녀들에게 귀감(龜鑑)이 되고 있다.
천상천하에 제일 귀한 우리 모두의 아이가 출생할 때 한 숨 내쉬고 들여 마시면서 생명체의 율려(律呂)는 시작된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사용하는 호흡(呼吸)의 개념은 숨을 내쉬고 들여 마시는 것이다.
인간이 마지막 한숨을 내쉬면서 돌아가는 것이 생(生) 즉 삶과의 이별이지만 아주 짧은 간극(間隙)이자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호흡은 생사(生死)를 가르는 생명의 원천이기에 호흡조절은 특히 수많은 수행단체나 학술연구단체 등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생일은 서양의 생일과 문화적 차이가 있다. 우리는 가족이나 지인들이 나의 생일을 기억해 주고 축하(祝賀)해 주기를 기대한다. 아무도 자신의 생일을 어떠한 형태로든 축하해주지 않으면 여러모로 기분이 상하고 때로는 외로운 마음이 든다. 누가 내 생일 기억해주고 관심을 가지고 축하해 주는 것이 우리나라 생일문화의 특성이다.
하지만 서양 특히 유럽에서는 자신의 생일을 기억해 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자신의 생일을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린다. 그뿐만 아니라 생일날 친구나 이웃을 초대하여 함께 식사하며 축하해 주길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축하객은 생일축하문화의 주인공을 여러 분야에서 응원하고 온종일 배려한다. 한국의 생일문화와 참으로 상이하다. 지역문화의 특성은 민족문화의 근간이 된다.
생일날은 여러모로 돌아보아야할 사안들이 많다. 인간은 육신의 만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쉽지 않은, 고행의 길을 찾고자 노력한 많은 각자(覺者)들을 발견한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 마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깨달음의 길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간은 육체(肉體)뿐만 아니라 정신(精神)도 함께 한 몸에 공존한다. 유가(儒家)에서 천부(天賦)적인 선한 마음(心)이 심성(心性)이 되어 본연지성(本然之性)은 착하다고 보았다. 맹자가 주장한 성선설(性善說)의 기원이 된다. 그러한 마음이 정신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어 심신(心身)의 존재가 우리 인간이다. 이와 연계된 이러저러한 생각이 많이 들어 상상도 해보고 일정부분 글로 표현해 보았다.
마음과 정신의 관계에서 선현(先賢)들은 여러 방면에서 연구하고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출생의 신비는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과 연계된 혼(魂)의 상관성이 내재되어 있다. 인간의 혼은 몇 개가 있어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정상적인 사람이 될까? 그 혼은 모두가 쉽게 말하는 영혼(靈魂)이다. 영혼은 무엇이며 또한 어떠한 영혼이며 어떻게 인간에게 들어오는가? 아니면 인간에게 자체적으로 생성되어 존재하는 비(非)물질인가?
선현(先賢)들께서는 인간에게는 왜 3혼(魂) 7백(魄)이 존재한다고 하셨을까? 그러면 혼은 3개가 있고 그 나름의 존재순서도 있다는 것인가?
백(魄)은 우리 순수한 말로 넋이다. 넋은 사후(死後)에도 매장된 무덤에서 대략 4대(1세대는 약 30년)정도 존재하고 제사 때 제물을 흠향(歆饗)한다고 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예로부터 여겨지고 있고 지금도 그렇게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인간이 그렇게 알고 싶어 하는 생과 사후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떠한 방법이나 사례를 통해 알려주셨을까? 생사의 비밀은 천기누설이라 밝히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각자 정신수행의 필요성이 강조되었고, 그의 길이 어떠하다는 것을 학인(學人)은 학습(學習)하고 경험하고 구전심수(口傳心授)로 전해졌을 것이다. 저마다의 순례의 길이 정신세계를 밝혀 주고 있다.
생일을 논하다 사후세계를 잠시 논하는 것은 논제에서 다소 비껴간 느낌을 주지만 생일 다음에는 언젠가는 다시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에 양면성을 고려하다 보니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다.
2022년 8월 29일
학담(學潭)
'오늘의 단상 그리고 내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태원(10.29) 참사와 사용된 용어 선택에 대하여 (0) | 2023.01.15 |
---|---|
이태원의 참사 뉴스를 보고나서 (0) | 2023.01.15 |
논밭에 고개 숙인 벼 (0) | 2022.08.05 |
자연에서 묻다. (0) | 2022.08.05 |
5.18 광주 민주화운동기념일을 앞두고 (0) | 2022.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