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동천(東天)의 서광(曙光)은 만물을 일으키는 시간입니다. 그와 같은 자연의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나 사람은 시간을 기다립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희망과 용기는 물론, 남모르는 기대감도 불러일으킵니다.
자연의 영속적인 시간은 인간의 기다림의 시간을 허투루 버리지 않고 한없이 품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그러한 이러저러한 시간을 기다리며 학 ·습(學·習)하고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한 삶이 그래도 인생을 허무하게 생각하는 구름 같은 인생이니, 초로인생(草露人生), 인생은 부평초 등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나을 것 같지 않나요?
기다림이 없는 시간을 우리가 기다림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은 또한 변화 속의 생명의 영속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주의 영원한 창조적 에너지가 생명의 네트워크(network)를 아름답게 빛내고 있어 기다림은 또한 자연스러운 시간입니다.
인생을 해시계로 본다면, 중천(中天)에 해가 떠 있을 때 독일로의 유학은 새로운 삶의 도전이 되었습니다.
어학 과정을 거쳐 학부부터 시작한 독일에서의 학생 시절이라 공부에 치중(置重)하다 보니 신혼생활은 사치스러운 이야기가 되었고 매년 힘든 과정을 반복적으로 이겨내어 야만 했습니다.
장기간의 세월이 흘렀으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있었습니다. 논문 제출과 심사과정이 끝난 후에 어느 날 예정된 구두(면접)시험 날짜가 왔습니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 외에 옵서버(observer) 두 명이 참여했습니다. 구두시험은 대략 30분 정도인데 1시간 이상을 넘겼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나에게 알고 싶고 묻고 싶은 것들이 많다고 이것, 저것 집중적으로 질문을 많이 하였으나 나름 소신껏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는 중간에 옵서버 중의 1명이 생수를 마시라고 주어 불타는 목을 적셔주니 순간 머리도 식힐 수 있어 마음도 더불어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심사위원 전원이 아주 좋은 점수를 주었고 박수로 응원하며 칭찬도 해 주었고, 그들 중에 한 분이 대학원 원장 Prof. Dr. G. 나의 연락처를 달라고 했습니다. 박사학위증(Ph.D.)을 수여 받은 후에 석사논문에 이어서 최종 전공 과정이 종교학이기에 종교학 박사학위증서를 별도로 받았습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종교학전공에 대한 나의 생각은 좀 남달랐다고 봅니다. 종교학자로서 나의 조국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숙고도 해 보았습니다.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종교사회문화의 전통을 두루 융화시키고 조화로운 정신세계를 갖추고 있어 정신문화 사상에서 관조해 보면 세계적인 문화선진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근대화 시기라는 역사적 안목에서 살펴보면 전통문화와 외래문화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던 시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해임시정부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건국 역사 속에 종교문화와 신앙문화는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종교와 신앙은 개념부터 다르고 그 의의 또한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명사상(正名思想)의 대의에 부합되도록 개념구별과 용어 사용에 명확한 지침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세계적인 교육이념과 교육법을 바로 세우는 것과 그와 함께 범국민적인 통찰, 통섭 사상과 정통성이 담긴 사회개혁이 추진되지 않았습니다. 사회개혁은 잘못 알고 있는 종교와 신앙, 종교문화와 신앙문화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종교학은 나의 조국(祖國)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의 독일 지도교수는 한국의 대학교 상황을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하면서 필자의 귀국행을 반대했습니다. 그의 진심 어린 배려는 대학교의 강의는 물론 프랑크푸르트의 시청에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프로젝트 수행을 하면서 교수 논문을 작성하라는 요청까지 이어졌습니다. 지도교수는 나에게 독일서 경력을 쌓고 한국의 대학교로 수평 이동하는 것을 조언했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독일과 한국에서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고향에 계시는 연세 많은 부모님이 귀국하려면 조속히 귀국하라는 말씀과 그분들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1년 후 모든 일을 중단하고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완전 귀국의 길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국내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외국으로 나가려고 하는 시대와는 반대에 귀국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의외로 생각했습니다. 나 또한 미래에 대한 염려는 다소 있으나 애써 잊어버리고자 했습니다. 무거운 마음이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마음에 큰 뜻을 품고 보람찬 내일의 희망을 꿈꾸며 귀국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완전히 귀국한 후 모친은 2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스스로 지병을 감추고 살으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처럼 같았고,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고 1년 이상 슬픈 마음은 지속되었습니다. 국내 강사로 시작한 일자리도 고정적이고 장기적이지 못해 안정된 삶을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중첩(重疊)되었습니다. 언제라도 돌아오라는 지도교수의 말씀이 생각나고 있으나 그리하기에는 쉽지 않은 난제가 많았습니다.
인내는 물론 본래의 자긍심을 가지고 예컨대 양파껍질을 벗기는 형상과 같은 사회문화의 구조와 태산준령(泰山峻嶺)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계절 따라 갈아입어야 할 옷이 변변치 못하고 사실 구색에 맞지 않아 세칭 그들만의 만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사방에서 몰려오고 욱여들어 오고 있는 문화의 충격이 나를 좌절시키지는 못했으나 사실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지인은 물론 친지들도 나에게, 우리에게는 이방인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학습하고 연마한 전공 분야에서의 활용과 활동은 미진했고 생의 안착과 정착도 하지 못했습니다.
문화적 충격에서 받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오늘날 한국 사회문화의 틀과 관례가 새롭고 또 새롭게 배워 가면서 살아가는 것도, 물론 쉽지는 않았습니다. 비상식적인 아카데미형의 토착 세력, 학교의 카드섹션, 색깔이 맞지 않으면 동질성이 없다고 하지만 억지를 써가더라도 색상을 변색시키는 재주도 없었네요. 독일의 지도교수님 외 두 분이 경력 및 추천서 등을 써주었으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서류 가방에 곱게 담겨있습니다.
자연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어찌하다 눈을 들어보니 서천(西天)에 석양(夕陽)의 빛이 물들기 전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맑고 쾌청한 어느 날 창고의 문을 열고 보니 10여 년 전 이사할 때 쌓아 둔 책이 들어 있는 종이 박스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많은 서적이 다행스럽게 잘 보관되었고 이러저러한 흔적이 담긴 것들을 다시 봅니다. 그러한 자료들이 비록 계획한 대로 하고자 했던 일에 사(활)용 되지는 못했지만, 나에게는 포부와 긍지를 안겨주었던 전공 서적이었고, 나름 소중했던 독일어 서적들이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책들이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국만리에서부터 이곳까지 가지고 왔을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참으로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이제는 그들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지 못해 언젠가는 폐지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 반면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세관원이 우리의 이삿짐을 보면서 유독 책만 많아 보이니까 이상하게 생각하며 외국에서 살았다는 나를 묘한 표정을 하면서 쳐다보는 모습이 스쳐갑니다.
몇 박스 정리하다 보니 전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을 영문으로 번역한 한 권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필요 없다고 생각되어 버리고자 했으나 국가에서 발간한 책이라 고려하다가 아무개가 달라고 하여 주었고 그 또한 읽어보고 과거 한국정치사회의 공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只今), 오늘의 시간은 곱게 물든 석양빛이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기 전(前)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워지고 인생의 길이 이것만은 아닌데 하는 문제를 제기해 봅니다.
부질없는 세월, 회한이 담긴 세월 속에 자신을 돌이켜 보고 반추(反芻)해 보니 부족하고, 어리석고, 미안하고 쑥스러운 일, 후회되는 일 등이 떠오릅니다. 세인(世人)이 바라보는 성공한 사람의 위치에 있지는 않으나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사회에 죄짓지 않고 살려고 노력한 것은 그나마 위로가 됩니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22. 9월 16일 초고, 11월 28일 보완
구정산(九政山) 자락에서
학담(學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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