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어떤 신앙인은 타국의 신앙단체교리와 신조 및 의례에 동화되어 자신의 행위가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타인의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경시하거나 무시한다. 그러한 모습은 잘못 심취된 신앙문화동화의 단면을 신랄(辛辣)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 반면에 수입된 외래문화를 더욱 신선미 나게 만들고 가치성 있게 재창출하여 역수출하는 것은 정신문화의 드높은 단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한국문화는 물론 일본의 애니메이션(animation)매체 및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라는 힘은 문화전파에 크게 일조하였고 두각을 나타내면서 국제적 감각과 독특한 분위기에 고조된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취사선택과 문화동화의 길은 자연스럽게 열려져 있으나 국익에 해악이 끼치는 상황이 발생되면 그러한 길도 무한정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한국문화의 장점과 서양문화의 장점을 부드럽고 원만하게 한국문화로 변화시키고 대중성을 위한 문화동화로 격상시킨 여러 형태의 문화예술은 서양인에게 문화의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예컨대 2018년 9월 예능계의 BTS(방탄소년단)가 ‘빌보드(Billboard) 200’에 벌써 두 번째 1위를 기록했다.
⑥ 많은 서양인이 수 천 년 동안 내려오는 동양의 깊고 심오한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그런 문화에 동화하려는 모습도 발견된다. 그들은 동서 문화의 장벽과 경계를 허물고 사상적 관심과 흥미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두고 있다. 다만 진정한 문화동화는 정신문화와의 동화와 함께 장기간 동안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인의 정신문화를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되는 것은 문화적 의식구조, 인생관 그리고 세계관이다. 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외래 종교가운데 하나가 불교이지만 한국불교가 대웅전(大雄殿)에 삼불(三佛)을 모셨고 공동체사회문화의 영역에 동화를 일구어내면서 호국불교가 되었다. 이와 같이 고대시대의 토착문화와 삼불문화의 동화(同化)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보고자 한다.
중국에서 전파된 인도의 불교가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정치적 관심과 배려 그리고 백성들의 호응 속에 성장하면서 어느덧 기존 토착문화와 동화(同化)되었다. 삼국시대의 신라(新羅)는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트리기 위해 당나라와 손을 잡고 나당연합군을 결성했다. 700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온 백제와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당하면서 고대시대의 백제와 고구려의 수많은 역사적 고서 즉 사고(史庫)가 불타버렸고 유물들이 약탈되고 유적과 유물이 파괴되었다고 본다. 이로 인해 오늘날까지 고대 백제(660년)와 고구려(668년)의 사적과 흔적이 멸실되면서 역사의 뒤안길에 남게 되었으나 왕족의 무덤에서 발굴된 소수의 유물이 그나마 찬란한 그들의 역사를 유추해보게 한다.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했다고 주장하나 실제는 반통일도 못하였다. 당나라는 평양에 설치된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고 신라의 국정간섭을 일삼았다. 신라가 고구려 유민들〔거란족, 해족(奚族), 말갈족 포함〕과 합세하여 최종적으로 675년 안동도호부의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었다. 고구려 유민들은 고구려 구강(舊疆)지역〔=지금의 중국 지린성(吉林省, 만주, 연해주 포함됨〕에 대조영을 중심으로 발해국(渤海國)을 세웠다.
역사적 혼란 속에서 불교는 살아남아 정신문화의 한 축(軸)을 담당했다. 신라의 불교수도승이 당(唐)나라에서 유학(留學)생활을 하였고 상호간의 문화교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신라의 불교(佛敎)가 기존 토착문화와 동화되어 호국(護國)불교로 발전되었다. 불교가 국교로서 약 1000여 년 동안 유지되면서 불교문화의 영역과 영성적 소통문화의 공간 그리고 생활문화의 광장은 크게 확대되었다.
⑦ 한국불교문화로의 동화는 생명력이 넘치는 예술적 부드러움의 표현으로 상징화되었다. 한국불교문화가 성장 발달을 지속적으로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정치ㆍ종교ㆍ사회ㆍ문화ㆍ예술 등의 문화 영역이 되었고 생활문화공간의 장으로 활성화 되었다. 호국불교로서의 입지와 위치가 공고해지면서 한국고대사에서 전래되고 있는 토속적인 삼신일체사상을 수용하여 대웅전(大雄殿)에 삼불(三佛; 석가모니여래ㆍ약사여래ㆍ아미타불)이 모셔지게 되었다. 삼불 가운데 법신불(法身佛)을 상징하는 석가모니여래불(釋迦牟尼如來佛, Śākyamuni, 약칭 석가모니불)은 역사적(歷史的) 인물이자 불교의 교조(敎祖)가 되었다.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bhaiṣajyaguru, 약칭 약사여래)는 석가모니의 응신불(應身佛)로서 백성들의 상처와 마음을 치유해주고 구제하는 현재(現在)의 부처이다.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약칭 아미타불 阿彌陀佛, Amitabha)는 보신불(報身佛, sawbohogakaya)이자 미래(未來)의 부처로서 삶에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므로 삼불은 또한 법신불, 응신불 그리고 보신불이라고 호칭되고 있으며 그 중에 응신불은 화신불(化身佛)이라고 하며 삼불사상은 토착문화인 삼수(三數), 천지인 삼재(三才)사상과 내면화가 되도록 동화되어 더욱 발전되었다. 이를 테면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존재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는 삼불(三佛)은 아미타불(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그리고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지칭하는 말이다.
불교교리에서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설명된 것이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이다. 아미타불 왼쪽에는 관음보살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이 수행하는 형태를 묘사한 것이다. 관음보살은 아미타불의 자비문(慈悲門)을 관장하고 대세지보살은 아미타불의 지혜문(智慧門)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⑧ 외래 종교였던 불교가 기존 토착문화와의 동화를 일구어내면서 한국불교로 발전하기 위해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거듭했다. 불교가 본연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크게 훼손(毁損)되지 않은 범위에서 생활불교문화로 정착되어 한국의 정치와 공동체사회의 소통문화영역 그리고 사상적 공유문화의 광장을 확보했다. 불교가 종교문화경영의 차원에서 동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사회와 국가적 공동체윤리 및 도덕적 책무(責務)를 성실하게 이행했다.
한국불교는 호국불교로서, 백성들과 함께 호흡하는 민중(民衆)불교로서 때로는 대중(大衆)불교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시대적 문화의 문을 열어가면서 정신적 사회적 가치 환원과 창출에 크게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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