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정치(神政政治, theocracy)에서의 식민지정책사관이 새로운 경제침략의 무기로(!)
중세시대부터 근대화시기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국가경영은
유일신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같은 민족이라고 할지라도 교리해석이 틀리면 이단(異端)으로 정죄(定罪)하고
억압하며 전쟁도 불사했으며 비(非)그리스도교의 국가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그의 민족을 노예로 삼아 착취하여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특히 중세시대 그리스도교의 국가경영은 신정일치(神政一致)로서 교권과 교황권이 강화되어 세계를 그리스도교화 시키는데 최우선의 목적을 두었다. 그로인해 수많은 비(非)그리스도교의 국가들 중에 약소국가들이 그리스도교 국가의 식민지가 되어 수탈당했다. 그들의 문화가 점차적으로 소멸되어 가면서 정체성이 상실되었고 자력으로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되었다. 그 가운데 그나마 살아남은 국가들은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국의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그리스도교의 유일신, 예수이름으로 선교정책과 국가경영이 실행되었다고 신앙고백을 했을지라도 그의 만행은 인류문화사에 그리스도교의 죄악사로 기록되었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름끼치는 악행, 죄악사를 들여다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한 손에 바이블, 한 손에 칼, 이와 같은 이분법적 그리스도교의 선교정책과 국가경영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실행되었다. 1095년부터 1456년까지 361년 동안 계속된 십자군원정전쟁 때 제시된 성전(聖戰), 성전(聖戰)참여자의 죄 사함, 면죄부 등도 모두 그리스도교의 신정정치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신정정치라는 구태(舊態)에서 벗어나지 못한 서구그리스도교는 선교정책, 통상정책이라는 미명(美名)아래 침략적 근성을 드러냈다. 그는 예수의 본래 사상과 정신을 저버리고 이율배반적 행동으로 근대화시기에 약소국가를 침략(侵略)했다. 서구의 열강은 또 다시 경제적 창출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조선을 역사의 시험무대에 올려놓고 약탈(掠奪)을 자행했다.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을 일으켜 조선의 영토를 침략한 미국은 조선을 식민지화시키는데 단초를 마련했다.
섬나라에서 대륙진출을 꿈꾸는 일본제국주의는 서구열강들의 행태를 눈여겨보며 배웠다. 일제는 지정학적인 측면을 적극 활용하여 조선침략을 계획했다. 1875년 일제(日帝)는 운요호사건(운양호사건, 雲揚號事件)을 자행하여 조선을 침공(侵攻)했다. 이로 인해 조선은 일제와 불평등한 조약을 맺었다. 일제는 쇠약해진 조선을 식민지화하는데 노골적인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일제의 적극적인 조선침략의 전략에 대해 미국은 지리적 차원에서 다소 방관하며 묵인하는 차원이었다. 1905년 일본과 미국과의 <카스카-테프라 밀약>은 일제의 대륙진출의 욕망과 야망을 충족시키는 결과로 이어졌고 통한의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었다. 일제에 강압적으로 외교권이 박탈당했다. 국권 중에 하나인 외교권박탈은 대한제국의 멸망의 징후(徵候)였고 결국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로 인해 역사 속에 사라졌다.
돌이켜 보면, 일제는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 이후 427년 만에 미국의 묵인(默認)하에 조선침략과 대륙진출을 가속화시켰다. 그 반면에 미국은 1871년 조선침공 이후 34년 만에 조선에 대한 미국 국가경영의 야욕을 일제에게 양보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일제에 의해 부당하고 억울하게 당한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1907년 미국을 믿고 특사를 미국으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이준(李儁)을 파견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준열사는 대한제국에 대한 일제의 무력행위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발자취를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는 과거에도 그렇게 이어졌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2019년 지금 미국의 국제적 경영상황은 어떠한가?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어떠한 차원에서 경영하고자 하는가?
일본은 한국경제발전과 한국이 일본을 능가하는 몇 가지 기술적 선두분야를 두 눈뜨고 보지 못하는 듯하다. 일본이 한국을 아직 여러모로 속국으로 보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한국은 여러 분야에서 일본의 부품을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고 일정부분 기술적인 부분에서 일본에 의존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국산화의 시급함은 오늘날에 이르러 국가적 국민적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3.1독립운동은 못했어도 경제독립운동은 하겠다는 것이 한국인의 심정으로 보인다. 일본의 한국경제침략이 현대 한국인에게, 한국 정치인과 정부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고 본다.
문제는 일제시대의 신정일치(神政一致)가 아베 총리로부터 새로운 자태로 변화되어 부활되려고 하는가? 에 있다. 대한민국의 심장과 경제심장부를 겨누고 있는 아베의 경제독트린정책이 참으로 유감스럽고 걱정스럽다.
그러면 미국은 한국과 중국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미국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환율전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정정치가 몰락하고 식민지사관이 자취를 감추었고 민주주의(民主主義, democracy)가 세계적으로 실천되어가고 있다. 그와 연계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의 국제적 선행과 실천은 인류문화사의 보감(寶鑑)이 되었다. 국제경제 질서유지 차원에서 보호무역주의에서 자유무역주의로 전환(轉換)된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한국경제침략,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의 국가경영, 미국은 정치적으로 한국에게 비상식적인 차원에서 엄청난 방위분담금과 연합군 형태로서 호르무즈해역 파견을 요청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일본의 한국경제침략에는 별로 관심 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 미국이다. 국력과 국제적 외교력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시기다.
미국인 그리피스(W.E. Griffs)의 작품 <은둔의 나라 한국>은 서양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조선(朝鮮)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비유했다. 그와 같은 용어를 서구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과학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미개한 나라라는 뜻이다. 그는 일본을 통해 한국을 개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혹자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민족은 평화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거나 현재나 동일하게 평화를 사랑하고 원하는 나라라고 할지라도 신무기로 무장된 군사력과 경제력이 없거나 미약하면 약소국이며 평화를 약속받지 못하는 나라가 된다. 강대국의 상황과 눈치를 보고 자국의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어찌 수평적이고 정상적인 외교(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반복되는 한 많은 ‘구걸외교’에서 언제나 이 나라는 벗어날 수 있을까?
현재 미국의 정치적 행보가 과거의 무엇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비록 신정정치는 사라졌으나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 모델의 나라라고 생각했던 미국에서 트럼프-독트린(Trump-Doctrine)이 진행되고 있다. 그 마저도 싫어하는 미국의 국제적 경찰의 모습이 그 어떤 새로운 모델로서의 국제적 신정정치로 변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2019. 08.09. 학담(學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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