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정한론(征韓論)은 어떤 모습으로 고개를 들고 있는가?
정한론(征韓論 Seikanron 세이칸론)은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 維新)시대를 전후하여 제기되었고 그 의미는 한국을 정벌(征伐)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일본의 침략적 팽창론은 이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시대부터 시작되었다.
히데요시는 일본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평정하면서 봉건적인 지배권을 강화한 다음에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을 일으켰다. 그의 뒤를 이어 도꾸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가 정적들을 제압하고 일본을 통일했다. 그 당시 사상가이자 교육가인 요시다 쇼인(Yoshida Shōin, 吉田松陰 1830~1859)이 정한론을 주장하면서 "천하는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은 평등하다."고 설명했다.
요시다 쇼인은 일본제국주의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고 ‘메이지 일본의 건설자’로 표현 및 칭송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고향 조슈 번(야마구치 현)의 개혁세력과 힘을 합쳐 도꾸가와 이에야쓰의 체제를 타도하고 천황중심체제의 메이지 유신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쇼인이 가담한 쇼군(Shogun, 將軍) 마나베 아키카쓰(間部詮勝)의 암살 계획이 발각되어 1859년 그는 참수(斬首)되었다.
요시다 쇼인은 사망했지만 그의 사상과 정신을 숭배하고 따르는 일본의 정치적 인물은 많다. 요시다 쇼인의 사상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다카스기 신사쿠 (高杉 晋作), 구사카 겐즈이(久坂玄瑞), 이노우에 분타((井上聞多,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로 개명),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기시 노부스케(佐藤信介)로 이어졌다. 요시다 쇼인의 문하(門下)에서 세 명의 총리와 여섯 명의 장관이 배출되었다. 쇼인의 위패는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
1946년 극동국제군사재판(Military Tribunal for Far East)에서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으로 체포됐으나 불기소 처분되었다. 그 재판은 미국과 일본의 정치적 밀월관계로 인해 참으로 비상식적으로 얼렁뚱땅 진행되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기시 노부스케(佐藤信介)는 현재 일본 총리 아베신조(安倍晋三)의 외할아버지이며 아베는 그에게 사상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2006년 아베는 근대 이후 일본의 정치계에서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아베는 총리에 취임하자 제일먼저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고 그 후에도 자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에 의해 패망하여 항복(降伏)했다고 국민들에게 가르치지 않고 있다. 그냥 천황이 일본 국민을 위해 종전(終戰)했다고 한다. 미국과의 종전협상에서 항복이라는 단어가 공식적인 자료에는 없다고 알려져 있어 그 실체적 진실이 궁금하다.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은 일본에게 각성제가 되었고 임진왜란의 패인(敗因)을 분석하는데 반면교사의 자료로 남겨졌다. 그 후 쇼인에 의해 주장된 정한론은 일본과 일본인들에게 역사적으로 사상적으로 큰 가르침이 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며 생각하며 되돌아보아야 하는가?
돌이켜 보면, 1875년 일제(日帝)의 만행 중에 하나인 운요호사건(운양호사건, 雲揚號事件)은 조선을 식민지화시키는 발판이 되었다. 그 사건의 특징은 근대화시기에 일제의 정한론자들에게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대한제국의 통한의 역사로 남은 을사늑약은 정한론의 결과였다고 본다.
작금(昨今)에 일본에서 신(新)정한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것은 메이지 유신의 정신을 이어 받은 자민당 극우파의 정책노선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아베정부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하는 한국의 세계적 첨단기술과 경영체제에 타격을 주고자 경제침략을 강행했다. 그에 대한 한국정부의 반응과 상황과 여러 부분에서 발생하는 변화과정을 아베정부는 분석하면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한국정부와 국민은 현명한 자세로 아베정부의 경제침략을 신 정한론의 맥락에서 신중하게 살펴보고 대처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이 한 단계 성장될 수 있는 시험무대가 역사의 광장에서 전개되었다.
자발적인 국민의 일본상품 불매운동은 그 성격과 품격이 보편적으로 유지되어야 세계적으로 공감을 이루게 된다는 것도 이미 숙지된 상태다. 그 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경계할 것은 경계하고 대응할 것은 대응하며 가능한 바르고 정확하게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인은 과거 100년 전 선조들의 독립운동정신을 이어가는 것 같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게 한국인은 성숙된 국민의식을 가진 국민이기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신 정한론의 안목에서 분석해 보아도 아베정부의 한국 경제침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수명을 다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오직 보다 밝은 희망찬 국운을 맞이할 수 있도록 각자 주어진 분야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이다.
2019. 08. 14. 학담(學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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