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종교문화사(史)와 교회사(史)의 구분
종교문화는 지역적 특성 및 역사적 성향이 담겨있기 때문에 보편적 종교문화사와 연결되어 있다. 종교문화사는 인간의 정신세계와 공동체사회문화의 본질과 속성 등을 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것은 각 나라마다 지역적 풍토와 특성에 따라 다양한 제도, 관습, 의례, 예술, 사상 등을 두루 포함한다.
세계 각국의 사상ㆍ신앙단체의 문화는 가까운 이웃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상호 발전된다. 서로간의 문화영향은 인간 삶의 전체부분과 직결되어 있다. 그가 남긴 삶의 흔적은 다양한 형태로 때로는 유형, 무형의 문화와 문화재로 남겨져 있고 각 지역의 종교문화사(宗敎文化史)가 되었다. 그러므로 오직 유일신 신앙단체의 형성과정과 가르침이 모든 인류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문화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세계종교문화사를 대변한다고 또한 말할 수 없다. 지금도 세계적인 조직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일신 신앙공동체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교다. 그는 과거처럼 세계종교문화사의 원형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있다. 이 단락에서 논하는 유일신 신앙공동체사는 그리스도교의 교회사를 뜻한다. 세계 그리스도교 국가 중에 약소국가를 침탈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착취한 사례는 그 나라의 신앙공동체사 즉 교회사이지 인류의 종교문화사는 아니기 때문에 구분되어야 마땅하다.
1) 그리스도교회사 – 그리스도제국의 형성사
그리스도인이 모여 예배를 올리는 장소가 그리스도교회이며 그의 사상과 삶의 의식 및 집합적인 행위와 결과 등을 기록한 것이 그리스도의 신앙공동체사 즉 교회사(敎會史)이다. 그리스도교회사가 인류의 종교문화사의 지표가 되는 것도 아니고 통합적이지 않기 때문에 보편적 인류문화사를 대표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인류의 종교문화사와 유일신단체의 교회가 명백히 구분되듯이 한국의 교회사가 한국사를 대표하거나 상위개념이 될 수 없다. 교회사가 신앙사상과 연계되어 사용된 용어가 보편적 개념이 아니므로 역사적 안목에서 기록된 것처럼 정명(正名)사용을 범사회적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그리스도교제국의 형성과정은 그의 신앙문화이자 교회사로서 특히 유럽의 정치철학ㆍ교육사상을 비롯하여 여러 형태의 제도적 관례와 의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제국의 형상과 기능 및 역할 등은 이미 위 단락에서 논구되었지만 오늘날 예수의 전언과 사상이 왜 국제적인 차원에서 다시 조명되어야 하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팔레스타인 지역 나사렛에서 출생한 예수, 나사렛 예수의 본래 정신은 청빈한 삶,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重生),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기, 용서, 박애(博愛) 그리고 지상평화사상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예수의 정신사상은 산상수훈(山上垂訓) 팔(八)복음과 주기도문(主祈禱文)에 온존하게 담겨있다. 예수의 생애와 복음사상과 실천행위를 본받고 그를 숭앙하고 추모하는 차원에서 창교(創敎)된 단체가 예수 그리스도교다. 초대 그리스도교의 출발이 예수의 뜻을 이어가는 사상단체가 예수이즘(Jesusism or Jesuanism)이었다. 예수가 전한 신의 사랑과 지상평화사상, 그의 십자가(十字架)사상과 십자가의 도(道)는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 사후 313년 그의 사상은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대제(大帝)의 밀라노칙령으로 인해 로마제국황제(皇帝)의 정치사상과 접목되었고 밀착관계를 유지해 가면서 로마제국의 통치이념이자 수단으로 수용되었다. 그의 사상과 이념은 차후 서로마 교황청 중심제도의 조직정비와 교리의 체계화는 물론 제도권의 유일신 신앙단체로, 그리스도교대제국의 정신적 지주로 발전되었다.
2) 동ㆍ서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화
로마대제국의 정신적, 정치적 통합사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수용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의 이론은 제국의 통치이념이자 수단이 되었다.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 종교회의(=니케아 공의회 Concilium Nicaenum Primum)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을 인정하는 아타나시우스(Athanasius)파를 정통으로 인정했고 그를 부정하는 아리우스(Arius) 파를 이단으로 규정해서 강제로 몰아냈다.
삼위일체론이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대표하는 니케아(Nicaea, 현재 터키의 이즈니크) 신조가 되었다. 이로써 그리스도교의 정통(正統)과 이단(異端)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지만 정통과 이단의 논쟁은 격화되어 차후 수많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정치권과 연계된 니케아 신조의 신봉자들과 다른 여러 그리스도교 종파1)사이에 삼위일체론에 대한 첨예한 논쟁과 적대관계가 형성되었다.
380년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 347~395)는 이교(異敎)와 그리스도교의 분파 중에 하나인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定罪)하고 니케아 신조 하나만 갖도록 규정한 칙령을 발표했다. 니케아 신조는 381년 교회의 승인을 받은 후부터 삼위일체론을 신봉하는 신앙인만 오직 그리스도인으로 간주(看做)했다. 그 신조는 분열된 예수사상을 하나의 교리로 수습하고 로마대제국의 정치이념이자 그리스도화의 지표가 되었다. 예수사상은 로마황제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는 매개체가 되었고 로마황제는 신적존재가 되었다.
그리스도교가 보편교회(universal church)를 지향한다는 차원에서 보편교회주의 또는 공교회주의라고 하였다. 보편교회는 차후 공의회(公議會, Concilium)를 통해 가톨릭시즘(Catholicism)이라고 호칭되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가톨릭시즘(Catholicism)은 제도적으로 유일신 신앙단체, 유일한 신앙단체(religion)로 전환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신, 전쟁의 신 여호와와 연계된 예수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신조가 로마대제국의 국가경영철학과 융화되었다.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광대한 로마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수도(首都)를 서로마에서 동로마 지역의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 오늘날의 이스탄불)으로 옮겼다. 395년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재위 379-395)황제가 그의 장자 아르카디우스(Arcadius 377/378 ~ 408)에게 동로마를, 차남 호노리우스(Honorius 384~423)에게 서로마를 통치하게 했다. 동ㆍ서 로마제국이 분리된 시기이기도 하다.”2)
그 후 동ㆍ서로마의 교황이 각각 추대되어 2명의 교황이 그리스도교대제국에 존재했다. 전자는 동로마 가톨릭교회, 오늘날 동방정교회(東方正敎會, Eastern Orthodoxy), 후자는 서로마 가톨릭교회가 되었다. 유럽동부지역에 위치한 동로마 가톨릭제국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약 천년동안 찬란한 비잔틴문화를 발전시켜 비잔티움제국(Byzantine Empire)이라고도 한다. 동로마 가톨릭제국은 고대 그리스, 로마 그리고 페르시아 문화를 융합시켜 독특한 비잔틴 미술문화〔둥근 지붕(dome)형식과 모자이크 벽화〕를 발전시켰고 그리스 정교회(正敎會)의 본산이 되었다. 동로마 가톨릭제국의 문화는 종교문화의 습합사상에서 이루어졌고 그의 문화경영은 동유럽의 문화토착화를 이루었다.
동로마 비잔티움제국은 1453년 오스만 투르크제국〔Osman Türk 제국(帝國)〕에게 무너졌다.
476년 서로마 가톨릭제국은 게르만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Odoacer)에 의해 멸망당했다. 그는 서로마 황제 안테미우스(Anthemius; 재위 467~472)의 친위군이었다.3)
서로마 가톨릭제국의 황제통치가 무너진 후 서로마가톨릭 교황(敎皇)이 추대되었고 점차 교황통치로 전환되면서 교황권이 강화됐다. 서로마 교황청은 교황을 중심으로, 교황은 로마시대의 황제처럼, 살아있는 신의 대리자로서 그리스도교대제국을 통치했다. 그의 통치사상은 유럽교회사의 중핵이 되었고 유럽국가의 역사형성에 영향을 주어 유럽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유일신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우월주의와 그리스도교대제국의 통치권한은 교황의 위격과 권위를 대변했다. 교황청의 바이블해석과 다른 학자들의 신학적, 과학적 해석은 용납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단으로 정죄(定罪)되었으며 그 어느 누구도 이단논리에 걸려들게 되면 죽음을 면치 못했다. 타(他)신앙단체에 대한 배타적 가톨릭사상은 이단논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교황에 의해 이단정죄의 명분이 내려지면 전쟁도 불사했었다. 그렇게 동ㆍ서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화는 이루어졌으나 그리스도교의 전쟁사는 역사적 사건으로 남겨져 있다.
각주
1) 그리스도교의 종파는 그 당시 큰 틀에서 아리우스파, 알렉산드로스파, 중간파(오리게네스 주의파)로 나뉘어졌다.
2) 안병로, 『그리스도교의 검과 평화』, 지성인, 서울, 2016년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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